히스토리아

갑신정변 본문

국사써브노트

갑신정변

엠알페이지 2007. 9. 8. 16:53
SMALL

갑신정변(甲申政變)


1884년(고종 21) 김옥균(金玉均)·박영효(朴泳孝)·홍영식(洪英植) 등 개화당이 일본의 힘을 이용하여 청(淸)에 의존하려는 민씨 중심의 세력을 물리치고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일으킨 정변.


계획은 1884년 12월 4일 우정국의 개국축하연을 이용하기로 하고, 연회 시초에 안국동 별궁에 방화하게 하여 척신들이 왕이 있는 궁궐로 급히 돌아갈 때에 암살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방화 계획이 실패하자, 김옥균 등은 즉시 궁궐로 들어가 고종에게청국군이 변을 일으켰다고 하고, 일본군의 호위를 청하여 경우궁(景祐宮)으로 국왕을 모셨다.


이어 궁으로 들어오는 윤태준(尹泰駿)· 민태호(閔台鎬) 등 사대당 일파를 살해하고, 다음날인 5일에 각국 공사·영사들에게 신정권의 성립을 통고하였다.


그러나 이때 청국군이 출동하여 열세였던 일본군은 패퇴하고 정변은 실패하고 말았다.
이에 김옥균· 박영효 등은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이로 인해 청· 일 양국의 한국쟁탈전이 더욱 격화되었다.

갑신정변의 실패 원인으로는

① 청군의 불법적인 궁궐 침범과 군사적 공격

② 개화당의 일본군 차병(借兵)의 실책과 일본군의 배신적 철병

③ 개화 정책을 지지할 사회계층으로서의 시민층의 미성숙

④ 민중의 지지 결여

⑤ 개화당의 민비와 청군의 연락에 대한 감시의 소홀과 정변 수행 기술의 미숙 등을 들 수 있다.

갑신일록에 전해지는 갑신정변 혁신정강 14개조(원래는 80여개조였으나 나머지는 전해지지않음)

① 대원군을 가까운 시일 내에 돌려보낼 것, 조공하는 허례를 폐지할 것

② 문벌을 폐지하여 인민 평등의 권을 제정하고, 사람의 능력으로써 관직을 택하게 하지 관직으로써 사람을 택하지 않을 것.

③ 전국의 지조법(地租法)을 개혁하여 간사한 관리들을 근절하고 백성의 곤란을 구하며 겸하여 국가 재정을 유족하게 할 것 ④ 내시부(內侍府 : 조선시대 내시의 일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를 폐지하고 그 중에서 재능 있는 자가 있으면 등용할 것

⑤ 그 동안 국가에 해독을 끼친 탐관오리 중에서 심한 자는 처벌할 것.

⑥ 각 도의 환상제도(還上制度)는 영구히 폐지할 것 ⑦ 규장각을 폐지할 것

⑧ 순사제도(巡査制度)를 시급히 실시하여 도적을 방지할 것

⑨ 혜상공국(惠商公局 : 1883년(고종 20) 보부상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상인조합)을 폐지할 것

⑩ 그 동안 유배, 금고(禁錮)된 사람들을 다시 조사하여 석방할 것 ⑪ 4영(營)을 합하여 1영을 만들고, 영 중에서 장정을 선발하여 근위대(近衛隊 : 대한제국 때 황실의 호위를 위하여 설치된 군대)를 시급히 설치할 것.

⑫ 모든 국가 재정은 호조(戶曹)로 하여금 관할하게 하며 그 밖의 일체의 재무 관청은 폐지할 것

⑬ 대신과 참찬은 합문(閤門 : 조회와 의례를 맡아보던 관서) 안의 의정소(議政所)에서 매일 회의를 하여 정사를 결정한 뒤에 왕에게 품한 다음 정령(政令)을 공포하여 정사를 집행할 것,

⑭ 정부는 육조 외에 무릇 불필요한 관청에 속하는 것은 모두 폐지하고 대신과 참찬으로 하여금 토의하여 처리하게 할 것

1882∼84년경 조선의 사회정치세력은 ① 급진개화파(개화당) ② 온건개화파 ③ 민비수구파 ④ 대원군수구파 ⑤ 위정척사파 등 5대 세력으로 분화되어 있었다. 1884년의 갑신정변은 5대 세력 중에서 ①급진개화파가 ③청국과 결탁한 민비수구파에 대항하여 일으킨 정치투쟁이었다.

LIST

'국사써브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동6주(江東六州)  (0) 2007.09.08
갑오경장(甲午更張)  (0) 2007.09.08
갑사(甲士)  (0) 2007.09.08
감은사지3층석탑(感恩寺址三層石塔)  (0) 2007.09.08
간쟁, 봉박, 서경  (1) 2007.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