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극, 탈춤, 탈놀이] 세 가지는 동의어로 본다. 가면을 쓴 참가자들이 집 주인에게 선물을 증정하고 함께 의식(儀式)의 춤을 추기 위해 모이는 축제 또는 여흥을 말한다. 전형적인 가면극은 무대의상을 입고 가면을 쓴 동성(同性)의 사람들이 한 무리가 되어, 횃불을 든 사람과 함께 사교 모임에 나타나 손님들과 더불어 춤추고 담화하는 것이었다. 한국 탈놀이(가면극)의 기원에 대해서는 농경의례설(農耕儀禮說)·기악설(伎樂說)·산대희설(山臺戱說)의 세 가지가 논의되어 왔다. 고구려의 무악(舞樂), 백제의 기악(伎樂), 신라의 처용무(處容舞)와 오기(五伎)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륙에서 전래된 산악백희(散樂百戱)가 향악화(鄕樂化)되고, 고려의 산대잡극으로 이어지며, 조선 전기에는 사찰기악의 민속극화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조선 전기까지의 각종 가면희가 선행예능(先行藝能)으로 참여하면서 조선 후기, 대체로 17세기 중엽에 이르러 현전하는 것과 같은 산대도감극(山臺都監劇)의 드라마가 정립되었다. 마을 굿으로 행해진 서낭제탈놀이의 대표적인 것으로 하회별신굿탈놀이와 강릉단오굿의 관노탈놀이가 있다. 이 놀이들은 농경의례설과 관련되는 것이지만 마을 굿의 일부로 연희(演戱)되며, 세시의례연극(歲時儀禮演劇)의 성격을 지닌 향촌형(鄕村型)의 탈놀이라고 분류할 수 있다. 반면에 굿과는 독립으로 공연된 산대도감 계통극은 보다 발전된 도시형의 탈놀이라고 할 수 있다. [산대극(山臺劇)]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민속극. 산대도감극(山臺都監劇)을 줄인 이름으로, 속칭 산대도감놀이· 산디도감· 산대놀이· 산디놀이· 산두나례도감·산두· 나례도감 등의 이름으로도 불리던 가면극이다. 이러한 이름은 조선조 전기에 산대나례(山臺儺禮)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했던 나례도감(儺禮都監)이나 산대도감(山臺都監)에서 유래된 명칭으로, 1930년에 채록한 〈양주별산대(楊州別山臺)놀이〉 극본에는 ‘산대도감극’이라고 표제를 달았다. 오늘날 산대극이라고 하면 경기지방에 전해오는 〈양주별산대놀이〉와 〈송파산대 松坡山臺〉를 가리키는 것이나, 그 놀이의 내용으로 보아 산대도감계통극으로 묶을 수 있는 가면극으로, 그 대사가 채록된 것을 들어보면, 앞에서 든 경기지방의 두개의 놀이와 황해도의 봉산(鳳山)·강령(康翎)·은율(殷栗)탈춤이 있고, 영남지방의 통영·고성·가산(駕山)·진주의 오광대(五廣大)와 수영과 동래의 야류(野遊) 등이 있다. 서울 변두리의 애오개〔阿峴〕와 녹번 등지의 본산대(本山臺)가 있었으나, 지금은 다 없어져서 알 길이 없으며, 본산대를 본받아 만들었다고 하는 〈양주별산대놀이〉에서 그 모습을 짐작할 수밖에 없다. <근대 - 문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