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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국(辰國)

엠알페이지 2024. 1. 2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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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辰)[또는 진국(辰國)]은 한반도 중남부 삼한(三韓 : 부족연맹체 단계)이 생기기 이전에 존재하였던 부족연맹체이다. 

중국에는 전국시대가 끝나고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하여 진(秦)을 건국(BC221)을 건설하고, 이어 진한교체기(BC206~BC202)을 거쳐 유방이 한(漢)을 건국하는 격동기가 있었다. 

이 진말(秦末)ㆍ한초(漢初)의 격동기에 중국으로부터 많은 유이민(流移民)들이 동방으로 피난하여 왔다. 전국시대의 연(燕)ㆍ제(齊)ㆍ조(趙) 출신의 사람들은 고조선지역으로, 진(秦) 출신의 사람들은 한반도 중남부 지역으로 이주해왔다. 위만도 이때 고조선 지역으로 넘어온 유이민이었으나, 나중에 준왕을 쫓아내고 왕이 된다.

이 중에 한반도 중남부 지역으로 이주해온 사람들은 한강 이남 지역에는 원시사회가 무너지고 새로운 정치집단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를 진(辰) 또는 진국(辰國)이라고 한다. 


한때 진국(辰國)은 금속문화의 수용을 위하여 중국 진(秦)나라가 망하고 건국된(BC202년) 한(漢)나라와 통교를 하였으나 대동강유역에 있던 위만조선의 반대로 실패하곤 했다.

진국이 존속했던 기원전 2세기의 한반도 중남부지역은 세형동검문화가 발달했던 단계이다. 세형동검(細形銅劍·폭 좁은 동검)으로 대표되는 정교한 청동기 문화는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 동북방에서 만개한 뒤 한반도로 넘어온 고조선의 ‘비파형 동검’이 ‘세형동검’으로 재창조된 것이다. 

그러나 철기의 사용은 제한적이었으며 무기(武器)와 의기(儀器) 및 공구(工具)의 주된 재료는 여전히 청동이었다. 청동거울과 청동제 방울 등은 권위의 상징물로 소중하게 여겨지고, 이는 제사장의 권위와 능력을 권력의 주요 토대로 삼고 있고 있는 제정일치적인 사회 단계에 있었다.

중요한 것은 ‘진국’의 영역에서 확인되는 기원전 3~2세기대 문화의 양상이다. 세형동검(細形銅劍·폭 좁은 동검)으로 대표되는 정교한 청동기 문화는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원전 2세기 말엽부터 기원전 1세기에 이르러 본격화되기 시작하는 철기문화의 유입으로 철자원 개발과 철기의 제작 보급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서북지역의 정치적 변동(위만이 준왕을 내쫓음BC194, 고조선의 멸망BC108 등)으로 상당수의 유이민들이 중부 이남지역으로 들어 오게 된다. 이로 인해 청동기의 제작과 관리 및 교역의 중심지로서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진국의 기능이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철자원이 풍부한 경상도지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경제적 구심점이 형성되면서 중부 이남지역 토착사회 전반에 걸쳐 중요한 정치·문화적인 변화가 진행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지역에 따라 시간적인 선후의 차이가 있고, 소국이 형성되는 직접적인 계기 역시 다양하였을 것이나, 70여 개 개별 정치집단으로서의 삼한 소국의 성립은 이같은 한반도 전체의 정치·문화적 변동과정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그러나 기록이 부족하여 많은 부분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한편 기원전 194년 위만에게 쫓긴 조선의 준왕이 건설한 나라가 바로 진국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사기'의 일부 판본을 제외한 이후의 역사서들은 진국을 삼한의 전신으로 파악하고 있다.

참고로 진국과 韓의 관계에 대해 삼국지 동이전에는 ‘진한은 옛 진국’이라 한 데 비해, 後漢書 동이전에는 ‘삼한이 모두 진국에서 발전한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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