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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도감(敎定都監), 정방(政房), 서방(書房), 도방(都房) 교정별감(敎定別監)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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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도감(敎定都監), 정방(政房), 서방(書房), 도방(都房) 교정별감(敎定別監)

엠알페이지 2007. 9. 17.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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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도감(敎定都監), 정방(政房), 서방(書房), 도방(都房) 교정별감(敎定別監)

교정도감(敎定都監)

고려 무신 집권시대의 최고 권력 기관. 교정소(敎定所)라고도 한다.

최충헌이 설치한 특수 정치 기구로서 최씨 정권의 최고 권력 기관이었다.

1209년(희종 5)에 최충헌(崔忠獻)이 자신을 죽이려는 모의를 발각하고 모의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설치하였는데, 이후 최씨정권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기구로 서무를 관장하고 지시․명령을 내리는 총괄기구 역할을 하였다. 또 관원들의 규찰업무, 인사행정, 세금에 관한 업무 등을 담당하였으며, 장(長)은 교정별감(敎定別監)으로 무인집권자가 담당하였다. 최씨정권이 무너진 이후에도 무인정권을 뒷받침해 주었으며, 원종 때 무인정권이 몰락하면서 없어졌다.

그 책임자인 교정별감(敎定別監)은 형식상 왕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실제로는 최씨 무신 정권이 타도될 때까지 실력자에게 자동적으로 계승되었다.

즉, 최충헌에 이어 최우, 최항, 최의의 3대는 물론이고, 김준, 임연, 임유무도그 자리에 있었다.

정방(政房)

최우가 인사권 장악을 위해 사저(私邸)에 설치한 기관으로, 최씨 정권 지배기구의 하나였다.

고려시대 최씨가 권력을 잡고 무인정치를 펴고 있을 때 최이(崔怡)?가 자기 집에 설치한 정치기구.

문무백관의 인사행정을 취급하던 기관으로서, 1225년(고종 12)에 설치되었다. 이 때부터 국왕은 정방에서 하는 일에 승인하는 형식을 취할 뿐인 허수아비가 되었다. 이후 존폐가 반복되다가 고려 말 지인방(知印房)·차자방(箚子房)이라는 명칭을 거쳐, 창왕(昌王) 때는 상서사(尙書司)로 개칭되었다. 처음에는 무신의 사설기관이었으나, 뒤에 국가기관으로 편입되었다.

그 이전에도 인사권은 최씨 정권에 있었지만 정방의 설치로 제도화되었으며, 이로써 무신 정권이 점차 안정되어 갔다.

정방에는 무신뿐만 아니라 문신들도 정색승선(政色承宣)이라 하여 함께 정무를 보았는데,

이것은 정방이 지닌 특성으로 문신이 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으며,

무신 정권이 무너진 후에도 국가 기관으로서 정방이 유지되어 나간 이유가 되었다. 공민왕이 폐지하였다.

서방(書房)

최우가 자기 집에 설치하여 문신 및 유학자들을 교대로 숙직하게 한 기구.

도방(都房)이 무사들의 최씨 정권의 숙위 기관이라면,

서방은 문사(文士)들의 숙위 기관이었다.

서방은 정방과 더불어 문사들을 회유하는 기능을 지녔다.

이를 통해 문사들이 다시 정치에 참여하였는데, 이인로(李仁老), 이규보(李奎報) 등이 대표적 인물들이다.

무신 정권의 종말과 함께 폐지되었다.

도방(都房)

고려 무신 정권의 사병(私兵) 집단.

경대승(慶大升)이 정중부(鄭仲夫)를 살해하고 집권한 뒤,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처음으로 조직하였다.

이의민(李義旼)이 집권한 후 이를 폐지하였으나, 최충헌(崔忠獻)이 이를 다시 부활, 조직을 확대 개편하였다.

이 때부터 도방은 근위대로서 삼별초(三別抄)와 함께 최씨 정권유지의 군사적 기반이 되었다.

무신 정권의 종말과 함께 폐지되었다.


교정별감(敎定別監)

고려시대 관직명.

무신집권기 최고권력기관인 교정도감의 우두머리, 교정별감의 자리는 무인정권이 끝날 때까지 실권자에게 계승되었다. 1270년(원종 11) 마지막 교정별감 임유무(林惟茂)가 피살되면서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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