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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조신원운동(敎祖伸寃運動)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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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조신원운동(敎祖伸寃運動)
1864년(고종 1년)에 사형을 당한 동학 교조 최제우의 죄명을 벗기고 억울함을 풀어서 종교의 자유를 얻고자 동학 교도들이 벌인 운동으로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전개되었다. 이것은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나기 직전의 일로서 동학 교세의 확대을 보여 준다.
제 1 차는 1892년(고종 29년) 전북 삼례에서 수천명의 신도들이 모여, 교조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 줄 것과 동학의 공인 및 탐관 오리를 처벌해 줄 것을 전라 감사에게 요청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제 2 차는 그 이듬해(1893, 고종 30년) 2월 박광호, 손병희 등 40여명이 경복궁 광화문 앞에 엎드려 교조 신원을 호소하는 복합 상소(伏閤上疏)를 하였으나 역시 실패하였다.
제 3 차는 같은 해(1893, 고종 30년) 3월, 전국 각지로부터 2만여 명의 동학 교도들이 충북 보은에 모여 교조 신원 외에도 척왜양(斥倭洋), 제폭 구민(除暴救民)의 정치적 기치를 내걸고 일어 났다. 이 집회는 정부의 회유로 일단 해산되었으나, 동학은 농민과 천민층의 광범한 지지를 얻으면서 그 세력이 날로 커져 갔다. 이 제 3 차 집회 때부터 동학 운동은 단순한 교조 신원 운동의 종교적 성격을 벗어나 탐관 오리의 숙청 및 외세의 배격 등을 요구하는 정치적 운동으로 발전하여 갔다. 동학 농민 운동(1894)은 그 연장선에서 일어 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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