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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원중보 동국통보 동국중보 삼한통보 삼한중보 해동통보 해동중보 은병(활구) 본문
건원중보 동국통보 동국중보 삼한통보 삼한중보해동통보 해동중보은병(활구)
고려시대 때 유통되었던 화폐들이다.
왕권강화와 상업진흥을 도모하던 숙종대에는 화폐에 대하여 적극적인 정책을 채택하고.주전도감에서 화폐를 만들었는데, 이는 당시의 일반적인 유통 체제였던 물품화폐 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고, 국가재정과 국민경제를 증진하기 위해 명목화폐인 주화(鑄貨 : 銅錢)를 주조, 유통시키게 되었다.
숙종대의 화폐 유통책은 주로 국가 재정의 확보에 있었으며, 윤관(尹瓘)과 대각국사 의천(義天)은 대표적인 화폐 유통론자였다.
동전화폐를 중앙 및 지방에 유통, 보급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과조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종 때에 이르러서는 해동통보를 비롯한 각종 동전의 유통은 중단되었다. 명목화폐인 주화를 수용할 사회경제적 여건이 미비하고, 화폐가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주화 제도가 가지는 모순성 또한 각종 동전의 유통이 중단된 중요한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건원중보(乾元重寶)
고려 성종 때 주조된 한국 최초의 화폐. 철전(鐵錢)과 동전(銅錢)의 두 종류가 있으며, 외형은 둥글고 가운데에는 네모의 구멍이 있다.
건원중보 철전은 996년(성종 15)에 처음으로 주조되어 창고에 보관되었다가 이듬해에 유통시켰다. 액면가 표시가 없는 이 화폐는 종전까지 화폐대용으로 사용되어온 포(布)·토산물과 함께 사용되면서1002년(목종 5)까지 계속 유통되었으나, 이해(1002년)에 이르러 목종의 교지에 의해 유통이 중단되었다.
원래 목종은 이를 주조, 발행한 성종의 뜻을 이어 그 유통을 더욱 확대하려 하였는데, 주전(鑄錢)만을 사용하고, 추포(鹿布 : 발이 굵고 거친 베. 화폐유통이 활발하지 못한 시대에 화폐대용으로 많이 사용됨.)의 사용을 금지시키면 국가로서도 이익이 없고, 백성들로부터도 원성을 사게 될 것이라는 시중(侍中) 한언공(韓彦恭)의 상소를 받아들여, 다주점(茶酒店)·식미점(食味店) 등에서만 사용하고, 그 밖의 사교역에서는 임의대로 토산물을 사용하게 하였다.
동국통보(東國通寶)
고려시대의 동전(銅錢). 만들어진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숙종 이전의 성종·목종 무렵일 것으로 추정된다. 1910년대 초에 개성 부근의 고려시대 고분에서 출토됨으로써 그 실물이 확인되었다.
이에 의하면 지름 24∼25㎜의 원형으로 가운데에는 5∼6㎜의 크기의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으며, 한 면에만 ‘東國通寶’라고 새겨져 있고 그 뒷면에는 아무런 글자나 무늬도 없다.
동국중보(東國重寶)
고려시대 화폐의 하나.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고려 전기에 금속화폐의 유통정책이 추진된 성종·목종 무렵이나 숙종 때일 것으로 추정된다. 1910년대 초에 개성 부근의 고려시대 고분에서 동국통보·건원중보(乾元重寶)·개원통보(開元通寶) 등과 함께 출토되었다.
삼한통보(三韓通寶) 삼한중보(三韓重寶)
고려시대 동전의 하나로 문헌기록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실물이 남아 있어 주조된 것은 사실이다.
1102년(숙종 7) 주전도감에서 화폐를 만들었는데, 삼한통보와 삼한중보도 이때 주조된 듯하다(즉 숙종때 주조된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름 23∼25㎜ 정도의 둥근 모양이고 중앙에 정사각형의 구멍이 뚫려 있으며, 상하좌우에 '삼한통보(三韓通寶)'라는 글자가 각각 한 글자씩 새겨져 있다. 이것의 가치는 확실히 알 수 없으며, 예종 때 용전(用錢)의 불편을 이유로 통용이 중지되었다.
해동통보(海東通寶)
1102년(숙종 7) 만든 동전(銅錢)으로, 한국에서 처음 사용한 엽전.
고려시대 금속화폐(동전)의 일종. 화폐 유통에 적극적인 경제정책이 추진되던 숙종 7년(1102)에 주조되었다.
화폐 발행 및 보급노력은 당시 경제적 여건의 미성숙 및 화폐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성공하지 못하였다. 해동통보 등 동전은 고분의 부장품으로 사용된 경우가 있어서 종종 무덤에 부장하였던 해동통보가 출토하고 있다.
해동중보(海東重寶)
고려 숙종 때 만들어졌다고 전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주전(鑄錢).
고려시대의 화폐.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주화(鑄貨)의 하나로 계림유사(鷄林類事)에 의하면 1103년(숙종 8)에 만들어졌다고 하나, 그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며, 대략 해동통보(海東通寶)가 만들어진 1102년 이후의 일로 추측된다.
모양은 엽전형태로 둥근 바탕에 가운데에 정사각형의 구멍이 뚫려 있고, 상·하·좌·우로 ‘海·東·重·寶 ’라는 4글자가 새겨져 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어 그 형태를 볼 수 있다.
은병(銀甁) = 활구(闊口)
고려 숙종 때(1101) 우리나라의 지형을 본떠서 은 1근으로 만든 병모양의 고가(高價)의 화폐. 은병 하나의 값이 포 100여 필에 해당한다.
민간에서는 이것을 활구(闊口)라고 했는데, 그것은 병의 입구가 넓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추측하고 있다.
동전또는 철전의 일반화폐에 비하여 고액화폐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숙종 6년(1101) 법정화폐로서 처음 제작하였다.
은병 1개의 가치는 때에 따라 달라서 쌀 10석(石) 또는 15~16석, 18석~19석, 20석, 40석, 50석에 해당했다. 1287년(충렬왕 13)에 쇄은(碎銀)을 사용하게 하고, 1331년(충혜왕 1)에는 소은병(小銀甁)을 사용하고 옛 은병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소은병은 오종포(五綜布) 15필에 해당했다. 은병은 동전과 달리 고액거래의 수단으로서 소은병·쇄은 등으로 형태가 변화되면서 고려말까지 유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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