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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흔적

금 줄

엠알페이지 2007. 5. 13.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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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줄

요즘 남편들은 만삭 아내의 출산일이 다가와도 준비할 게 거의 없다. 하지만 지난 70년대 이전 아버지들만해도 마음과 몸이 함께 바빴다.


산모에게 먹일 미역, 탯줄을 자르고 묶을 가위, 실, 대야를 챙기고 볏짚을 모아 새끼도 꼬아야 했다.


또 이 새끼에 매달 숯, 청솔가지와 붉은 고추도 미리 준비해야 했다. 새끼줄과 그 장식품들은 “아기를 낳은 곳이니 출입을 삼가달라.”는 뜻으로 대문 밖에 내걸 ‘금줄’을 만드는데쓰였다.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하던 시절, 금줄에 걸린 붉은 고추는행인들의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할 만큼 스스로 당당함을뽐냈다. 빈부격차나 신분의 고하, 지역을 가릴 것없이 새끼줄에 빨간 고추와 숯, 솔가지가 매달렸으면 아들이고 솔가지와 숯만 걸리면 이었다.

인줄’ 또는 ‘검줄’이라고도 불렸던 금줄엔 ‘자식 농사 반타작도 다행’일 만큼 유아사망율이 높던 시절 우리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었다.

금줄이 걸린 집은 아무리 가까운 친인척도 삼칠일(21일)동안 출입이 금지된다. 저항력이 약한 신생아와 산모를 외부의 질병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는 과학적 배려가 그 바탕에 깔려 있다.

민속학자나 종교인, 역사학자들은 새끼를 꼬고 줄을 치는 행위 자체를 하나의 엄숙한 의례로 보고 있다. 새끼는 통상 오른쪽으로 꼰다. 그러나 금줄은 반드시 왼쪽으로 꼰다. 산실(産室)을 범하려던 질병이나 사악한 기운들이 왼새끼의 ‘당돌한 방어’에 놀라 감히 선을 넘지 못할 것이란 기원이 담겨 있다.

금줄에 달리는 고추는 물론 사내아이를 상징한다. 동시에고추의 붉은 색은 악귀를 쫓는 색이다. 늘푸른 솔가지생명의 상징이고, 정화(淨化)의 의미와 기능을 가졌다. 숯은 크기가 1000분의 1㎜정도 되는 무수한 구멍을 가지고 있다. 곰팡이 같이 덩치가 큰 미생물은 기생하지 못하는 반면 유익한 미생물들은 숯의 구멍에 서식한다. 숯의 이 구멍은 산화의 원인인 양이온을 흡착하는 능력이 탁월한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숯을 단 금줄은 산모와 아기를 해로운 미생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했다.

금줄은 신생아가 태어난 집 대문 뿐아니라 장독대의 된장·고추장·간장독에도 쳐졌다. 이때는 고추나 한지(韓紙)·숯을 끼운다.때론 한지를 오려 만든 버선본을 거꾸로 붙인다. 왼쪽으로 꼰 새끼와 거꾸로 선 버선본은 둘다 귀신의 범접을 막는 ‘비정상의 괴력’을 상징한다.

아파트 같은 공동 주거문화가 확산되면서 요즘엔 금줄을걸 만한 대문 자체가 사라져간다. 50대 이하 세대중엔 금줄을 보긴 했어도 직접 만든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출생지가 병원인 아이들에게 금줄문화를 알려주는 건 바로 민족 생활사의 뿌리를 가르쳐 주는 일이다. 금줄은 비록 사라져가지만 잊기에는 소중한 우리 모두의 유산이다.

(글 출처 : 2002년 02월 02일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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