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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민의회(大韓國民議會)

엠알페이지 2008. 12. 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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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민의회(大韓國民議會)

1919년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건립한 임시정부.

한국과 러시아가 두만강 하류에서 접경하게 된 것은 1860년 9월 북경조약(北京條約)으로 러시아가 우수리강 동안(東岸)을 영유하게 된 데서 비롯되었다. 이 때를 전후하여 한국의 유리민이 만주의 간도와 연해주(沿海州)로 들어갔고, 이 지역 한인의 수는 1898년 2만 3000명, 1921년 말 9만 4554명이 되었다.

이와 같이 형성되어간 한인사회에 1905년 한족회(韓族會)가 구성되었다. 그 해 러시아가 러일전쟁에서 패하자 동부 시베리아에 출정하였던 러시아 군대가 반란을 일으켰다. 이후 시베리아가 일대 혼란에 빠짐에 따라 한인사회가 자위책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 이 단체를 조직하였던 것이다.

대한국민의회는 한말 이후 러시아령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운동의 전통을 계승하고 그 역량을 총집결하여 활발한 항일운동을 전개한 러시아령 지역의 한인 임시정부로서 독립운동사상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였던 단체이다.

이어 1907년 소성(蘇城)에서 대한교육청년회·공진회(共進會)·대한교육청년연합회가, 1909년 공공회(公共會)가 조직되었다. 또한, 1910년 6월 연해주에 망명한 의병을 중심으로 13도의군(十三道義軍)이 조직되었다.

유인석(柳麟錫)이 도총재(都總裁)로 추대되었는데, 13도의군 도총재 명의로 고종이 연해주로 망명해 망명정부를 수립할 것을 상소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8월 일제의 한국강점 소식이 전해졌다.

대한국민의회는 한말 이후 러시아령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운동의 전통을 계승하고 그 역량을 총집결하여 활발한 항일운동을 전개한 러시아령 지역의 한인 임시정부로서 독립운동사상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였던 단체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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