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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군현(漢郡縣) · 한사군(漢四郡) 본문
한군현(漢郡縣) · 한사군(漢四郡)
BC108년 전한(前漢)의 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뒤 그 영토를 통치하기 위해 설치한 낙랑(樂浪)·임둔(臨屯)·진번(眞蕃)·현도(玄菟)의 4군과 그 속현을 말한다. BC108년부터 AD314년까지 420여 년간 존속하였다.
▷ 낙랑군 (BC108년 ~ 313년)
▷ 진번군 (BC108년 ~ BC82년)
▷ 임둔군 (BC108년 ~ BC82년)
▷ 현도군 (BC107년 ~ 404년)
▷ 대방군 (204년경? ~ 314년)
근대 이전에는 전통적으로 사군(四郡)이라 불렀고, 현대 한국사학계에서는 한군현(漢郡縣), 동방변군 등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한사군의 위치, 의미와 역할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일본의 학계가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의 직접적 통제를 위한 것이 라기보다는 위만조선 사회내부의 지배세력 재편과 연결되어 나타난 정치변화로서 親中國勢力이 중심이 된 정권재편의 일환이었다.
BC 82년에 임둔군과 진번군이 폐지되어 낙랑군과 현도군에 합쳐졌고 BC75년에는 현도군이 고구려의 서북지역으로 쫓겨갔으며 옥저의 경우 낙랑에 속하는 등의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다. 또한 후한 건무 6년(AD30)에는 옥저지역의 동부도위(東部都尉)가 폐지되었다. 이같은 상황은 한군현이 토착사회의 강력한 반발에 의해 실질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축출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후 한군현 관련 기록은 거의 나타나지 않다가 후한 말 요동지역에서 자체 역량을 강화하던 공손씨가 한예(韓濊)[후한 말기의 韓과 濊] 등에 대한 세력 강화를 목적으로 후한 헌제의 건안(建安)연간(196∼220)에 낙랑의 둔유현(屯有縣) 이남지역에 대방군(帶方郡)을 설치함으로서 기록에 다시 나타난다. ‘진서’ 지리지('晋書' 地理志)에는 낙랑군에 6개 현이, 대방군에 7개의 현이 배속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어 이들의 영역이 계속 축소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낙랑군과 대방군은 고구려의 성장과 공격으로 313∼314년 사이에 각각 소멸되었다.
※ 참고자료
영토 분쟁 사안 ‘한사군 위치’ :
https://www.seoul.co.kr/news/plan/leedukil/2018/02/06/20180206022003
(출처 :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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