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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창(機器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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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창(機器廠)
1883년(고종 20) 무기제조관서로 설치된 기기국(機器局)에 부속된 공장.
조선 시대의 관아 (1883년 - 고종 20년)로 신식 기기를 만들기 위해 설치하였다.
개항 이후 서양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노력하던 조정에서는 특히 신식무기의 도입 및 제조에 관심을 기울였다. 1880년에 새로 설치된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에 군물사(軍物司)·기계사(機械司) 등을 두어 우선 제도를 정비하였다.
이어서 1881년 신사유람단과 영선사 일행을 파견하여 서양의 과학기술을 시찰, 습득하게 하였다. 청나라에 파견된 영선사는 함께 데리고 간 학도(學徒)와 공장(工匠)을 톈진기기국(天津機器局)에 배속시켜 화약·탄약 제조법, 그리고 각 분야의 자연과학지식과 외국어를 배우게 하였다.
이들 영선사 일행은 1882년 말 귀국, 병기제작소의 건설을 추진하였다. 종사관 김명균(金明均)이 데리고 온 톈진공장(天津工匠) 4명과 함께 1883년 3월 서울 삼청동에 기기창을 건립하였다.
기기창에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운동기기·기부(汽釜)·조총기기(造銃機器)·내찬혈기(內鑽穴機)·조포기(粗砲機)·세포기(細砲機)·제약기기(製藥機器) 등을 청나라로부터 구입해 무기와 화약을 생산하였다.
어떤 무기가 어느 정도 생산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1894년 동학운동과 청일전쟁으로 사실상 문을 닫았다. 기기창은 우리 나라 최초의 신식무기공장이며 동시에 근대공장이라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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