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아
9서당, 10정, 6정 본문
9서당(九誓幢)
통일신라의 중앙군의 9개 군대 편제.
583년(진평왕 5)부터 역대로 증설되어 687년(효소왕 7)에 완성된 군단(軍團)이다.
통일 이후 삼국 통합이라는 명분을 살리기 위해 백제와 고구려 유민, 그리고 말갈족까지 포괄하여 조직했으며, 국왕에 대한 서맹(誓盟)을 다하는 군대라는 의미에서 이름을 서당(誓幢)이라고 부른 듯하다.
신라인으로 구성된 3개의 부대를 비롯하여 3개의 고구려인 부대, 1개의 백제인 부대, 2개의 말갈의 귀속민(歸屬民)과 포로 중에서 용감한 자를 뽑아 조직한 부대이다.
수도방위군일 뿐만 아니라 여러 국가들의 지배계층을 구서당의 상급군관으로 조직하고, 이를 통해 각국의 주민들을 포섭하려 하였다.
10정(十停)
통일신라 때 지방의 각 주(九州)에 배치하였던 군부대의 명칭. 일명 삼천당(三千幢)이라고도 한다.
음리화정, 고량부리정, 거사물정, 삼량화정, 소삼정, 미다부리정, 나천정, 골내근정, 벌력천정, 이화혜정 등 10개의 정을 말한다.
삼국사기 직관지에는 544년에 설치된 것으로 되어 있다.
원래 신라에는 육정이라는 군사조직이 있어서 이를 각 지방의 주에 배치하였으나, 삼국통일 이후 그 통치지역이 넓어짐으로써 전국의 행정구역을 재편하여 677년부터 시작하여 678년에 이르러서 9주 5소경의 설치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각 주에 별도의 군사조직을 두었는데, 이것이 10정이다.
당시 9주에는 각각 하나씩의 정(停)을 설치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한주(漢州)는 다른 주에 비해 관할구역이 넓었을 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그 중요성이 감안되어 2개가 설치되었으므로 모두 10정이 되었다.
실제로 삼국시대에 존재한 정은 최전방의 군사적 요충지에 설치되어 군주(軍主)의 통수를 받는 군단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대외진출과 외적의 방어에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통일신라의 10정은 이러한 삼국시대의 정제도를 계승하여 확대된 영토를 9주로 구획하는 과정에서 설정된 것이었다.
그러나10정은 군관들이 대체로 기병 중심으로 편성되었다는 점과 삼국시대 정의 군관조직에 비하여 격이 한 단계 낮아졌다는 것 등이 지적될 수 있다.
6정 (六停)
삼국간의 전쟁이 최고조에 달한 7세기경에 재정비된 신라의 6개 핵심 군단.
6정은 이전의 정 및 통일 이후의 10정과는 조직과 성격에서 크게 달랐다.
6정 이전에 존재했던 정은 최전방 요충지에 설치된 군관구(軍管區)의 중심으로서 군주(軍主) 1명에 의해 통수된 것이었으며, 10정은 이러한 정의 계통을 이어받아 한 단계 격을 낮춤과 동시에 기병부대로서 특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대해 6정은 각 정이 2~4명의 장군들을 공동의 통솔자로 삼고 그 휘하에 복잡한 군관조직을 갖춘 것으로써 7세기경에 대규모 전쟁을 수행하기 위하여 편성한 임시적인 군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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