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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군 6위

엠알페이지 2007. 7. 2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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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중앙군사조직을 '2군6위체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기원은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정부가 지방의 호족들이 사적으로 유지하던 군사력을 일원적인 중앙군조직으로 재편성하려고 노력한 데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중앙군 조직의 재편성은 태조 때부터 시도되었는데, 성종 때를 전후하여 지방의 군사력이 해체되고 2군과 6위의 새로운 군사조직이 마련되었다.

이군(二軍)

고려시대 경군(京軍)의 핵심부대인 응양군(鷹揚軍)과 용호군(龍虎軍)의 통칭.

고려시대 중앙군의 조직. 고려의 군사조직은 태조가 후삼국 정벌에 동원 했던 군대가 기간이 되어 조직되었다.

2군은 응양군과 용호군의 2개의 군영으로 편성되었으며, 2군은 6위보다 후인 현종때 형성된 것으로 여겨지며, 6위의 상위에 있던 친위군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6위(六衛)

고려시대 중앙군 조직인 좌우위(左右衛), 신호위(神虎衛), 흥위위(興威衛), 금오위(金吾衛), 천우위(千牛衛), 감문위(監門衛)를 합쳐 부르는 말.

6위는 성종 때의 군사제도 정비과정에서 이전의 군사조직을 해체하고 번상입역(番上立役)이라는 새로운 충군(充軍) 원리에 의해 충원되었다. 좌우위·신호위·흥위위 등 3위는 가장 규모가 크고 핵심을 이루는 실질적인 군사력으로서 이 3위에 소속된 군인 수가 2군과 6위 전체 군인수의 거의 3/4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수도인 개경(開京)의 시위, 출정(出征)과 변방의 방수(防戍) 등이 임무였다.

2군6위의 각 군과 각 위에는 최고 지휘관으로서 상장군(정3품) 1명과, 부지휘관으로 대장군(종3품) 1명이 각각 있었다. 그리고 각 군과 각 위의 조직 내에서 1,000명의 인원으로 구성되는 1령을 지휘하는 장군(將軍:정4품) 1명과, 장군을 보좌하는 중랑장(中郞將:정5품) 2명이 있었고, 이들 밑에 200명의 부대를 지휘하는 낭장(郞將:정6품) 5명이 있었다. 그 밑에 , 별장, 산원, 위, 대정 등의 무관이 있었다.

2군6위 체제는 숙종 때 여진족의 침입을 계기로 윤관(尹瓘)에 의해 별무반(別武班)이 구성되면서 변화되기 시작하여 1170년 무인란 이후 삼별초(三別抄)가 실질적인 군사력으로 기능하면서 유명무실해졌고, 원의 간섭기에는 더욱 그러했다. 이후 공민왕 때에 다시 고려 전기의 군사제도를 정비하려는 노력이 시도되었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고, 조선 초기에 이르러 군사제도의 정비가 이루어졌다.

이명로의 얄개노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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