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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주(客主)

엠알페이지 2008. 4. 12.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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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주(客主)]

1. 개념

상품 집산지에서 상품을 위탁받아 팔아주거나 매매를 주선하던 중간상인. 현재의 상법상 위탁매매인에 해당한다.

좁게는 행상, 넓게는 객지에서 장사하는 모든 상인을 뜻하는 객상에 대하여 모든 행위의 주인(주선인)이라는 뜻을 갖는 객상주인(客商主人)이다.

상인으로부터 매매의 위탁을 받은 물건을 모아서 모든 상인에게 유통시키는 위치에 있는, 초기의 자본가 계급에 속하는 우리 나라 고유의 좌상(坐商)이다.

보부상(褓負商)이 유통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직접 소비자들과 상대하는 우리 나라 고유의 행상인 것과 대조된다.

객주는 중간상인으로서, 직접 자신을 위하여 물건을 매매하는 것이 아니고, 위탁자와 그 상대방의 사이에서 간접매매를 하는 상인인 점에서 우리 나라 고유상인인 거간(居間)과 같다.

객주는 또한 구전상인(口錢商人)으로서 위탁자를 위하여 매매를 하고 그 대가로 구전만을 받으므로 거간과 같다.

그러나 객주는 주선상인으로 자기 이름으로 위탁자의 계산하에서 매매위탁물의 거래를 담당하기 때문에 그 행위는 주선이며, 그런 점에서 단순히 거래를 보조하는 거간과 다르다.

2. 업무

주된 업무는 위탁자와 그 상대방 사이에서 간접매매하고 그 대가로 구전을 받는 위탁매매업을 하였다. 이와 같은 제도는 다른 나라에도 있으나, 우리 나라 고유의 객주제도는 그 주업무인 위탁매매 외에 부수업무로서 위탁자에게 무상 또는 실비로 숙박을 제공하는 여숙업무, 화물을 가진 사람이나 살 사람에게 대해 대금입체(貸金立替) ·자금제공 등의 금융 편의를 위한 금융업무, 각종 물화(物貨)를 무상으로 보관하기 위한 창고업무, 그리고 화물운반을 위한 마차나 마방(馬房) 또는 선박을 알선하는 수송업무를 하였다.

3. 유래

기원에 관하여는 아직 정설이 없고, 신라설과 고려설 및 조선설 등이 있는데, 그 중 고려설이 가장 유력하다.

신라설에 의하면, 신라시대에는 이미 항해술이 발달하여 국제거래와 내외상인의 왕래가 빈번함에 따라 여인숙까지 생긴 것에 비추어 객주제도도 발생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신라설은 그것을 고증할 확실한 문헌자료가 부족하다.

고려설은 객주의 일종인 여각에 해당하는 경주인(京主人) 또는 원우제(院宇制)가 문헌에 나오고 있는 점으로 보아, 그때에 객주가 발생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조선시대에는 이미 객주가 성황을 이루고 있었으므로 조선시대 발생설은 설득력이 희박하다.

4. 종류

물상객주(物商客主)

일반적인 객주를 일컫는 것으로 물산객주(物産客主)라고도 한다. 위탁매매·숙박·금융·도매·창고·운반 등 주선의 전반에 걸친 업무를 담당한다. 이들은 영업사무뿐만 아니라 위탁자의 일신상 잡무까지도 통례적으로 돌봐주었다.


여각(旅閣)

대체로 물상객주와 비슷하나, 여각이 일반의 객주와 다른 특징은 다루는 화물의 품목에 있다. 물산객주의 경우에는 제한이 없으나, 여각은 미곡·어물·소금·과채·시탄 등 부피와 무게가 큰 품목을 취급하고, 창고와 마방의 설비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여각이 다루는 화물의 부피가 크기 때문에 팔리기까지 그것을 보관할 시설이 필요하며, 영업소까지 운반하기 위해 우마차를 동원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에 와서는 그와 같은 구별이 없어졌다.


만상객주(灣商客主)

중국상인들을 상대하던 객주로 의주만(義州灣)의 상인들을 말한다. 주요거래품목은 중국산 직물과 약재인 당재(唐材) 등으로 조선상류사회에서 수요가 컸다고 추측된다. 그 뒤 청(淸)나라 때 중국과 거래하던 박천(搏川)의 객주들은 청선객주(淸船客主)라고 구별하여 불렀다.


보상객주(褓商客主)

보상(봇짐장수)을 상대로 하는 객주를 말한다. 주로 남선보상(南鮮褓商)의 객주로 보부상의 행상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형성되었다. 보상(봇짐장수)은 부상(등짐장수)과 더불어 각지의 장을 돌아다니는 행상으로, 장꾼 또는 보부상이라고도 하였다.
보상들은 각기 그 지방의 일정한 객주를 단골로 정하여 오랫동안 거래하였으므로 보상객주가 형성되었다. 보상은 주로 특산물을 취급하였으므로 특정의 보상객주를 중심으로 움직였고, 그 신임도 매우 두터웠다. 예컨대 충청도 한산의 모시, 전라도 구례의 베(삼베), 나주·남평의 무명 등을 취급하는 상인이 그러했다.


보행객주(步行客主)

위탁매매는 하지 않고, 보행자들에 대한 숙박만을 본업으로 삼는 객주를 말한다. 이들의 특징으로는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된 점, 경비가 유상이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주막에 비하여 고급이었다고 한다.


환전객주(換錢客主)

금융업을 전업으로 삼는 객주로 일반객주에 비하여 상당히 큰 자본으로 운영되었다. 수산물생산의 경우 거액의 생산자금이 선용금조(先用金條)로 객주금융에 의존하였다.


무시객주(無時客主)

일상에서 사용되는 가정일용품을 다루는 객주를 말한다. 취급품목은 조리·바가지·수수비·솔·삼태기·고무래·절구 등으로 주로당시 가정부인들의 일용품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물건을 다루던 상점을 ‘초물전(草物廛)’이라 하고, 그런 물건을 지게에 지고 다니며 파는 무시행상이 따로 있어서 무시객주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


경주인(京主人)

지방관리를 위하여 중앙과 지방간의 연락·숙박제공 등을 주선하는 여각주인(旅閣主人)을 말한다.

넓은의미에서 객주의 일종이다. 경주인의 신분이 지방관리, 즉 향리이고 그 위탁자도 관리이며 그 업무 또한 국가에 관한 업무이지만, 업무의 성질이 주선인 점에서 객주의 한 종류로 볼 수 있다.

원(院) 또는 원우(院宇)

행상들의 숙박소이다. 국가의 기관으로 역(驛)과 원을 두고, 역은 군사상·정치상의 명령전달을 담당하였고, 원은 산업상·교역상의 편의를 위하여 행상인들의 숙박을 담당하던 곳이었다.

원의 업무가 숙박의 제공인 점에서 보행객주나 일반객주와 공통되지만, 원은 영업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국가의 공공기관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원은 뒤에 일반인에게도 개방되었다.

그밖에 객주는 그들이 다루는 화물의 종류에 따라서도 여러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그 주요한 것으로는 청과객주(靑果客主)·수산물객주(水産物客主) 및 곡물객주(穀物客主) 등이다. 그밖에 약재·직물·지물 또는 피물(皮物) 등의 객주도 있었다.

5. 변천

이상과 같이 객주는 광범위한 업무와 거대한 자본을 통하여 자본가계급을 형성하였고, 1876년 개항 이후에는 외국무역의 담당자가 되어 개항지와 각 포구에는 객주회·박람회 등의 여러 명칭의 동업조합을 결성하여 독점권을 강화하였다.

1889년에는 인천항 등지에 정부에서 지정한 25인의 독점적 객주인 25객주제 등을 실시하여 큰 세력을 구축하였다. 그 뒤 객주는 외세의 압력에 의한 관허제 폐지의 과정을 겪고, 외국자본과의 경쟁력 부족, 과중한 납세의무 등을 통하여 상당한 압박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고유의 단결력을 과시하여 8·15광복 후에도 발전을 계속하여 우리 나라의 산업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다.

관련항목 : 여각, 거간, 보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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