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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三韓)

엠알페이지 2024. 4. 3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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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三韓)

삼한(三韓)은 고조선 멸망 후 한반도 중남부에 존재하였던 정치집단인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마한은 경기도·충청도·전라도 지역에, 진한과 변한은 경상도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삼한사회에 대한 가장 오래된 역사기록은 '삼국지' 위지 동이전이며, '후한서', '진서' 등에 기재되어 있다. 이들 기록에 의하면 마한에 54국, 진한 변한에 각각 12국이 있다고 하였으나 그 숫자에 대해서는 고증에 의하면 아직 확실치 않다.

삼한(三韓)은 사방 4천리 면적을 가진 광대한 나라였다. 고구려(사방 2천리)와 부여(사방 2천리) 두 나라를 합해야 삼한의 면적과 같아진다. 마한의 호수가 10만 호, 진한과 변한의 호수가 4만 호~5만 호에 이른다. 부여 8만 호, 고구려 3만 호를 합해도 마한의 10만 호와 비슷하다. 이렇게 광활한 강역과 인구를 가진 마한은 삼한 중에서도 맹주였다. 백제 온조왕이 황하를 건너왔을 때 마한 왕은 동북쪽 사방 백리의 땅을 떼어줘 살게 했으며, 진(秦)나라로부터 고역(苦役)을 피해 망명해온 사람들에게 동쪽 땅을 떼어 주어 살게 했으니 그곳이 바로 진한이었다. 진한은 나중에 신라로 발전한다. <출처 : 영암신문(https://www.yasinmoon.com/news/articleView.html?idxno=44967)>

마한의 맹주국인 목지국의 진왕이 총연맹체장의 구실을 하였으며, 읍락(邑落)에는 신지·견지라는 대족장이, 보다 작은 읍락에는 읍차·살해·부례 등이 지방의 통치권을 행사하였다.

* 마한 - 경기, 충청, 전라도 지방의 54개국. 목지국의 지배자가 마한왕 또는 진왕으로 추대되기도 함→ 백제국 성장, 마한 지역 통합→ 백제로 발전
* 진한 - 대구, 경주 지역 중심 12개국 → 사로국 성장 → 신라로 발전
* 변한 - 김해, 마산 지방 중심 12개국 → 가야국 성장 → 가야 연맹으로 발전

<이미지 출처 : 2009년 개정 한국사 교과서>

1) 위치
한강이남 지역 → 진의 발전으로 마한, 변한, 진한의 연맹체 등장
(한강 이남 지역의 진(辰)이 B.C.2세기경, 남하 유이민들의 새로운 문화와 토착 문화와의 융합으로 삼한 형성)

2) 정치
① 군장국가 : 신지 ․ 견지(큰족장), 부례 ․ 읍차(작은족장), 마한 목지국(진왕) → 삼한 전체 주도
② 제정분리 : 제사장인 천군이 농경과 종교에 대한 의례를 주관하는 신성 지역 소도의 존재
③ 마한(백제국) → 백제, 변한(구야국) → 가야연맹왕국 , 진한(사로국) → 신라

3) 경제
① 철제 농기구 사용 → 벼농사,
② 수전경작이 시작되어 벼 농사 널리 행해짐 → 저수지 발달(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 제천 의림지 등)
③ 철 생산(변한) → 화폐 사용, 낙랑 ․ 왜 수출
④ 변한의 특산물 : 철 → 낙랑, 일본에 수출, 화폐처럼 사용

4) 풍속
① 반움집(구덩식 움집), 귀틀집(큰 통나무로 정(井)자 모양으로 귀를 맞추어 층층이 얹고 틈을 흙으로 발라 지은 집)
② 두레조직(공동작업)
③ 소도(蘇塗) → 정치적 군장의 세력이 못 미치는 곳. 제정분리.
④ 노비는 머리를 깎고, 남자는 상투를 틀었음.
⑤ 변한에서는 장례에 새의 깃털을 사용하여 사망자의 승천을 빌고, 문신의 풍습이 있었음.

5) 제천행사
① 수릿날(5월, 씨 뿌리고 난 뒤)
② 계절제(10월, 가을 곡식을 거둔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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