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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저(沃沮)

엠알페이지 2024. 4. 2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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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옥저(沃沮)는?
옥저(沃沮)는 부여족의 한 갈래로 옥저는 동옥저로도 불렸고, 다시 남옥저와 북옥저로 구분된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동옥저는 남옥저와 동일한 집단으로 보기도 한다. 3세기 전반 동옥저의 가구 수는 5천여 호(戶)였으며, 해안을 따라 동북방향으로 길게 뻗친 거주지역은 1천여 리에 달하였다고한다.

2. 위치
기원전 3세기 무렵에 함경남도 해안일대에서 두만강 유역 일대에 걸쳐 있었던 종족과 읍락 집단이다. 남옥저는 함흥 일대에 있었고, 남쪽 영흥 부근에서 동예와 경계를 이루었으며, 북옥저는 길림 연변에서 두만강까지에 있었다고 한다. 동예와 마찬가지로 변방에 치우쳐 있어 선진 문화의 수용이 늦었으며, 일찍부터 고구려의 압력을 받아 크게 성장하지 못하였다.

3. 정치
동예와 마찬가지로 군장국가(君長國家)의 형태이며, 왕이 따로 없고 각 읍락(邑落)의 족장(읍군, 삼로)이 자치적으로 읍락 내의 일들을 운영해 나갔다.

4. 경제
어물과 소금 등 해산물이 풍부하였고, 토지가 비옥하여 농사가 잘 되었다. 옥저는 고구려에 소금, 어물 등을 공납으로 바쳤다. 

5. 풍속
고구려와 같은 부여족의 한 갈래이지만 풍속은 다르다.
 ① 민며느리제 : 장래에 혼인할 것을 약속하면, 여자가 어렸을 때 남자 집에 가서 성장한 후에 남자가 예물을 치르고 혼인을 하는 일종의 매매혼이다.
 ② 가족 공동 무덤(골장제) : 가족이 죽으면 시체를 가매장하였다가 나중에 그 뼈를 추려서 가족 공동 무덤인 커다란 목곽에 안치하고, 입구에 쌀 항아리 매달아 놓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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