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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경도감 (刊經都監)

엠알페이지 2007. 9. 8.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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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경도감 (刊經都監)

조선 초기 세조 때 불경의 국역과 판각을 관장하던 관립기관.

1461년(세조 7) 6월에 왕명으로 설치하여, 1471년(성종 2) 12월에 폐지하기까지 11년간 존속하였다.

세조는 대군 때부터 불교를 좋아하여 부왕인 세종의 불서 편찬 및 간인(刊印)을 적극 도왔으며, 왕위에 오른 뒤에는 찬탈을 속죄하고 불교에 심취하였다. 1457년(세조 3) 왕세자가 병으로 죽자 왕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친히 불경을 사성(寫成)하였다.

또한 대장경 한 질을 비롯한 많은 불경을 경판에서 찍었으며, 법화경 등 여러 종류의 불경을 활자로 인출하기도 하였다. 1458년에는 해인사 대장경 50부를 인출하여 각 도의 명산대찰에 분장(分藏)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세조의 숭불정책 구현을 위한 첫 사업이었다.

또, 1459년 유신(儒臣)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국역 증보판 ≪월인석보≫를 간행하였다. 이와 같은 간경사업의 경험을 살려, 불경 간행을 국가사업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왕권으로 간경도감을 신설하고 제도화하였다.

간경도감에서 불경의 국역 및 간행이 세조의 강력한 왕권에 의하여 한때 추진되었기 때문에, 그의 숭불정책과 이념이 당시의 지배층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다만 왕실과 일부 계층 그리고 서민층에 의해 받아들여졌으나 성종의 등극 이후 폐지되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그 사업이 지니는 의의는, 첫째 귀중한 국어학 자료를 많이 생산하여 국어학사의 체계화에 크게 기여한 점에 있다. 특히, 국역본 불전은 훈민정음 창제 직후의 일이므로 오늘날 학계의 연구에 귀중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은 물론, 한자본 불서를 국역한 세조의 문화사적 의의도 그 가치를 크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당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루어진 주요 불전의 국역본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널리 보급되어 사람들이 불교의 근본 이념과 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였고, 얻어 보기 어려운 귀중한 장소자료(章疏資料)를 많이 생산, 전유시킴으로써 불학연구에 크게 기여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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