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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의 반원자주화 정책과 신돈의 개혁

엠알페이지 2020. 2. 29.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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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원세력 기철과 권겸

원나라 황제의 둘째 황후이며 태자의 어머니이기도 한 누이동생 덕에 지금껏 아무런 어려움 없이 고려안에서 권세를 누려온 기철을 점차 원나의 세력이 약해지고 있음에 심기가 불폈했다. 그와 같은 처지인 권겸 역시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는 반원정책을 펼치며 개혁을 외치는 왕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졌다.

실패로 끝난 역모

왕이 베푸는 연회장에서 기철과 권겸, 노책은 왕을 살해할 계획을 꾸민다 마침내 왕이 방심하고 있다 생각하여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는 찰나, 숨어서 이들을 지켜보던 병사들에 의해 이들의 계획은 탄로나고 그 자리에서 처형되었다. 오랫동안 고려 내 부패의 온상이던 부원세력의 중심은 기철 일파를 제거한 뒤, 공민왕은 다소 마음 편하게 지지부진하던 개혁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원의 연호를 중지하고 원나라의 압력으로 변경했던 관제를 다시 되돌리는 등 공민왕의 반원자주화 정책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보였다.

두 차례에 걸친 홍건적의 침입

내부의 분란을 꽃피기 전에 알아 채고 잠재웠나 했더니 이번에는 외세의 침입이 공민왕의 정책에 걸림돌이 되었다. 원나라 군대에게 쫓긴 홍건적이 퇴로를 한반도로 삼아 고려를 침범한 것이었다. 첫 번째 전투에서는 고려군이 대 승을 거두었으나 2년 뒤 다시 쳐들어온 홍건적이 끼친 피해는 예상 외로 막대해서 마냥 외침을 물리쳤다는 것에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난은 평정했으나 고려 역시 쉽게 복구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고 국력에도 큰 손실을 입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공민왕의 개혁에도 부득이하게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또 한번의 역모, 흥왕사의 변

홍건적이 물러 가고 나라가 잠잠해지자 마치 순환이라도 하듯 이번에는 또 다시 내부 분란이 일어났다. 역모를 꾸미는 주범은 다름 아닌 김용으로, 그는 공민왕이 태자 시절에 원나라에서 10년간 머물러 있을 때 곁에 시종을 들던 신하기도 했다. 이처럼 처음에는 공민왕의 측근이었던 그였으나 그 마음이 간사하여 시기심이 많고 심약하여 작은 일에도 쉽게 마음을 바꾸는 성품이 끝내 화를 부르고 말았다. 권력에 눈이 멀어 왕을 시해하기로 결심한 그의 계획은 환관 안도치에 의해 탄로나게 되어 안도치가 공민왕의 복장을 하고 대신 칼을 맞아 왕을 구하였다.

신돈의 개혁

가까운 신하를 잃고 실의에 빠져 있던 공민왕이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왔던 것은 왕후인 노국공주와 한 명의 승려였는데, 이 승려의 이름은 신돈이라 하였다. 신돈은 공민왕의 개혁 정책에 왕후의 내조와 맞먹는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인물이었기에, 공민왕은 항상 그의 존재를 든든히 여겼다. 두 사람의 정성 어린 격려로 다시 새롭게 마음을 먹은 공민왕은 신돈을 왕사로 봉하고 본격적으로 긴밀한 의견 교환을 통해 많은 난관들에 부딪쳐 흔들리던 개혁 정책에 다시금 박차를 가했다.

꿈을 잃은 공민왕, 신돈을 내치다

하지만 이처럼 뜻을 같이하며 견고하게 유지되던 공민왕과 신돈의 관계는, 왕후인 노국공주의 죽음 이후로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공민왕의 변화를 가장 먼저 실감한 사람은 신돈이었다. 이전까지 자기와 함께 밤을 새며 고려의 앞날에 대해 토론하던 진지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하릴없이 손수 그린 왕후의 그림만을 붙들고 낮이나 밤이나 술에 취해 있는 주정뱅이만이 남은 것이었다. 그런 공민왕에게 작언을 하는 신돈은 왕의 신임을 잃어 갔고, 그에게 눌려 기를 펴지 못하고 있던 반대 세력들은 바로 이 때다 하는 생각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공민왕을 찾아가 아무래도 역모를 꾀하려는 기미가 보인다며 신돈에 대한 험담을 늘어 놓았다. 이미 판단력을 잃은 공민왕은 결국 신돈을 내치기로 결정을 내렸다. 왕의 신임을 완전히 잃은 왕사는 쓸쓸히 유배지로 보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형당하며 생을 마감했다. 자신과 함께 고려의 개혁을 꿈꾸던 두 사람을 모두 잃은 공민왕은 더 이상 지탱할 곳이 없어진 탓에 계속 휘청거리다 결국은 신하의 손에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공민왕과 노국공주, 신돈의 죽음으로 인해 고려는 다시 오지 않을 개혁의 꿈을 묻은 채 조용히 내리막길로 향하고 있었다.

출처 :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620009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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