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아
민속으로 보는 성(1) 본문
민속으로 보는 성(性)
성(性)은 가장 고귀한 것이면서도 오랜 기간 유교 전통에 갇혀 그에 대해 관심을 드러내면 천박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민간에 전해 내려온 설화들과 전국 각지에 널려 있는 남근석, 여근석 등 각종 성 관련 민속자료들은 조상들의 성에 대한 관심을 공개적으로 표현한 상징물들이다.
전통 생활과 민속에 뿌리내린 성에 대한 올바른 접근 없이는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의 깊이도 얕을 수밖에 없다.
한국문화 유산 가운데 아직 온전하게 설명되거나,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많다.
그것들이 사라지기 전에 제대로 알리는 작업은 매우 긴요하다.
쉬운 예로 전통적인 성과 관련한 풍속과 이야기가 그러하다.
최근에 와서 이들과 관련한 보고서나 논문, 그리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논의가 과연 우리 문화를 올바르게 읽어낸 것인가 하는 점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즉 이들 성 관련 소재를 상품화하거나 흥미의 대상으로 이해하고 즐기기 위한 목적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 조상들이 단지 성을 즐기는 대상으로 삼았을까.
조선시대에 중국에서 남녀의 성행위가 묘사된 도자기 하나를 가져왔다가 지체높은 관리가 가 지체 높은 양반과 관리들의 목을 달아나게 만들었다. 그 도자기는 바로 남녀의 성행위가 묘사된 것이었다. 조선시대에는 바로 이런 도자기를 완상하다가 적발되면 바로 처벌을 받았다. 지금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조선시대에 자행된 것이다.
그러나 민중들은 그와 같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찾기가 어려웠다.
오히려 그런 즐김의 대상이기보다는 삶과 직결된 신앙적 대상으로 더욱 생활에 밀착되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엿볼 수 있는 증거는 청동기시대까지 소급될 정도로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
그 예가 울주의 반구대 암각화와 대전 괴정동 농경문의기(農耕文儀器)이다.
<울주 반구대 암각화>
반구대 암각화를 보면 맨 위에 성기가 굳건하게 서 있는 남자가 있다.
그 밑에는 고래와 여러 물고기들이 그려져 있다.
<대전 괴정동 농경문의기(農耕文儀器)>
이미지출처:대전 향토사료관
농경문의기에는 솟대와 따비(풀뿌리를 뽑거나 밭을 가는 농기구)로 밭이랑을 가는 농부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그 농부의 모습이 매우 가관이다. 성기가 유달리 크게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 유물을 통해서 우리는 성기 문화의 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과장되게 큰 성기가 많은 수확을 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사람의 신체에 달려 있는 과장된 성기가 보다 많은 생산을 초래할 수 있다는 믿음은 그런 점에서 원초적인 사고라고 할 만하다.
신체에 달려 있는 성기가 그와 같은 능력을 지녔다고 한다면, 거대한 바위로 나타난 성기 모습은 얼마나 능력이 탁월할 것인가.
이후에는 세계일보에서 연재했던 ‘민속으로 본 性 이야기'(2004)에서 발췌, 요약하여 시간 나는 대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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