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바위 혹은 입석(立石)이라고 부르는 바위는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길쭉하게 서 있는 바위를 선바위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선사시대 이후 늘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왜 이들 바위가 주목을 받았는가? 무엇보다도 이들 바위는 땅속에 박혀 있다.
그런 형상 자체도 매우 의미심장하지만, 실상은 이런 바위 형태가 무언가를 상징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이 기자(祈子)신앙과 같은 민간신앙의 치성 대상으로만 존재해 왔던 것일까? 인왕산에 위치한 선바위는 국사당을 밑에 두고 있다.
원래 이 국사당은 태조 이성계를 모신 사당으로 남산에 있었던 것인데, 일제 때 남산에 신사를 세우면서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국사당 위에 있는 선바위에는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관련된 전설이 있다. 선바위를 성 안쪽으로 넣으면 불교가 성하고 유교가 퇴보한다고 해서 성 밖에 놓이게 되었다고 한다. 선바위는 자연의 조화로 만들어졌는데, 마치 남녀가 같이 서있는 것 같은 형국이다. 그래서 이 바위의 모습을 이성계 부부의 상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일설에는 무학대사 상이라고도 한다. 안내판에는 선바위의 ‘선’을 스님이 장삼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여 참선한다는 선(禪)자를 따서 선바위로 불렀다고 적혀 있다. 이 설명은 끌어다 붙인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둥처럼 솟아 있는 바위를 대개 선바위, 즉 입석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선바위의 일반적인 특징은 남근의 형태를 띠고 있다. 다만 그것을 상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에 고상하다고 생각되는 표현을 찾은 것은 아닐까. 일제시대에 발간된 ‘조선의 귀신’에도 이 바위를 부부암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기자와 자손의 번영을 기원하는 석신(石神)으로 그 대석 앞에는 소원을 기원하는 축문도 새겨져 있다고 한다. 선바위에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치성을 드린다.
이때 공양을 올리는데, 대개 과일 공양과 촛불 공양이 일반적이다. 그런 후에 바위를 향해서 절을 올린다. 소원은 일반적으로 아기를 낳기를 기원하는 기자속(祈子俗)이 주류를 차지한다. 이 외에도 집안의 평안이나 사업 번창 등을 기원할 때 찾기도 한다. 2004.05.18 (화)세계일보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