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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흔적

민속으로 보는 性(2)

엠알페이지 2008. 4. 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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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으로 보는 性(2)

사람의 신체에 달려 있는 과장된 성기가 보다 많은 생산을 초래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우리 조상들은 거대한 바위에 나타난 성기를 숭상했다. 그리고 이들 바위를 신성하게 모시는 민간신앙으로까지 발전하였다.

성기바위, 즉 남근석은 그렇다면 어느 때 신앙의 대상으로 자리잡았을까?
청동기 시대 이래로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서 정착생활을 하며 농사를 지으면서 추구하였던 가장 큰 지향점은 굶주림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수확이 요구되었다.

농사가 잘되고 못되고의 사연은 물론 자연재해로부터 얼마나 피해갈 수 있는가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그 자연재해는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남근석에 대한 치성행위였다. 즉 많은 결실을 위해 생산력이 강한 남근석에 치성을 드림으로써 보다 많은 씨를 뿌릴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이와 함께 자식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도 탁월하다고 믿었다.
불임여성들이나 딸만 생산한 부녀자들에게는 이 바위 자체가 바로 생산할 수 있는 변강쇠와 같은 남성신이었던 것이다.

우뚝 선 바위는 바로 강력한 힘의 원천이며, 동시에 단단함을 통해 영원한 능력을 지닌 것으로 생각하였다. 특히 자식 낳기를 기원하는 기자(祈子)신앙의 대상으로 남근석을 전국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남근석에 대한 숭배와 의례 행위가 오랫동안 우리의 전통으로 계승되어 왔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좌 : 전북 순창군 창덕리 소재 남근석 복제품

우 : 경기도 안양 삼막사 소재 여근석

그런데 이와 같은 성기바위에 대한 믿음이나 숭배가 미개인들이나 하는 행위로 치부되는 경향도 부정하기 어렵다.

실증주의와 서구적 과학주의, 혹은 기독교와 같은 고등종교에서 바라볼 때 남근석에 대한 믿음은 그런 면이 두드러질 수 있다.

그러나 이웃 나라인 일본에는 한 마을에도 성기를 모시는 신사를 여러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것은 어떤 이유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것은 바로 다른 문화의 잣대로 자기 문화를 잴 수 없다는 것을 명쾌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계일보 시리즈물 ‘민속으로 본 性 이야기'(2004)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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