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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원, 혜민국, 활인원, 혜민서

엠알페이지 2007. 11. 9.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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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원(大悲院), 혜민국(惠民局)

[고려와 조선시대의 구제, 의료기관(救療機關)]

고려시대 1049년(문종 3)에 개경(開京;지금의 開城)의 동.서 2곳에 두었는데 환자, 굶주린 자, 행려병자등을 치료하며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

조선시대에는 건국 초부터 서울의 동소문, 서소문 밖에 이를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태조 때는 활인원(活人院), 세조 때는 활인서(活人署)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1882년(고종 19)에 폐지된 뒤, 혜민서(惠民署)와 통합하여 제중원(濟衆院)이 되었다.

[대비원(大悲院)]

고려 시대의 환자 치료 및 빈민 구휼 기관. (고려시대에 주로 가난한 백성의 의료와 구호를 맡아보던 관아)

가난한 백성의 질병 치료를 맡아본 의료구제기관이다.

수도 개경에 동.서의 양 대비원을 두었다. (1049년 개성의 동쪽에 동대비원을, 서쪽에 서대비원을 설치 하였는데 두곳을 합쳐 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이라 불렀다. )

그 임무는 환자의 치료가 주된 것이었으나, 주린 자와 무의탁자를 수용하여 옷과 음식을 주어 구휼하기도 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동.서 활인원(活人院 - 나중 동.서 활인서)으로 그 명칭이 바뀌었다.

[혜민국(惠民局)]

고려 시대 가난한 환자에게 무료로 약을 제공하던 의료 기관.

조선 시대에는 혜민서(惠民署)로 이름이 바뀌었다.

[활인원(活人院)]

조선시대의 진츌.

조선시대 1414년(태종 14)에 설치하여 도성(都城) 안의 백성들의 의료(醫療)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

한양부 동부 연희방에 동활인원과 용산에 있던 서활인원을 통틀어서 동서활인원(東西活人院)이라 하였다.

고려시대의 동대비원과 서대비원을 고쳐 각각동활인원 서활인원이라 하였다가,

1430년(세조 12)에 이를 통합하여 활인서(活人署)로고쳤다.

[혜민서(惠民署)]

조선시대 1466년(세조 12) 설치하여 의약과 서민을 구료(救療)하는 임무를 관장하는 관서.

조선 초기에 고려시대의 혜민국을 답습하여 1392년(태조 1)에 혜민고국(惠民庫局)이라는 명칭으로 설치하였고, 1414년(태종 14)에 혜민국이라 개칭하였으며, 1466년(세조 12) 관제를 개정할 때 혜민서라 고쳣다.

<얄개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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