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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청동기 시대

엠알페이지 2023. 9. 20.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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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동기의 보급
 
 한반도에는 신석기 시대 말엽에 중국의 요령(랴오닝), 길림(지린), 러시아의 연해주 지역에서 덧띠새김무늬 토기 문화가 들어왔다. 이는 빗살무늬 토기 문화와 약 500년 동안 공존하다가 점차 청동기 시대로 넘어간다. 이때가 기원전 20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경으로 한반도 청동기 시대가 본격화된다. 청동기시대에는 무기, 의기(제기), 장신구 등은 청동을 사용하였으나, 농사짓는 기구는 청동기가 아닌 간석기를 사용하고 있다. 

※ 청동=구리(Cu)와 주석(Sn)의 합금

참고로 일제 강점기에 일본 학자들은 한반도에는 청동기 시대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8 · 15 광복 후 한반도 곳곳에서 청동기 유적이 발견되면서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도 청동기를 널리 사용했음이 확인되었다.

2.  청동기 시대 유물

청동기 시대의 유물은 청동기시대 집터, 고인돌, 돌널무덤, 돌무지무덤 등의 무덤에서 나오고 있다. 청동기는 처음에 주로 장신구와 제사 용품을 청동으로 만들었지만, 점차 무기도 청동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청동기는 돌보다 단단하지 않아 농기구는 여전히 돌로 만들어 사용했다. 석기는 간석기로 도구제작기술이 발달했고, 토기는 민무늬 토기가 대표적이다.

1) 간석기(마제석기)
신석기 시대에 석기가 출현하여 뗀석기를 사용하다가 청동기시대에는 도구제작기술이 진보하여 간석기를 사용했다.
① 반달돌칼 : 곡식의 이삭을 자르는 데 쓴 연모
② 홈자귀(유구석부) : 나무를 다듬거나 구멍을 뚫는 데 사용한 연모
③ 조개날도끼 : 주로 나무를 자르는 데 이용
④ 바퀴날 도끼(환상석부,달도끼), 톱니날 도끼는 타격용 도구지만 권위를 상징하는 의식용구로 사용될 가능성
⑤ 돌도끼[石斧], 돌괭이, 갈돌 등(신석기시대에도 있던 도구들)
* 청동기시대이지만 농기구는 (간)석기를 사용했다.

반달돌칼

2) 토기
민무늬토기(=무늬없는 토기=무문토기) :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 신석기 시대 말부터 철기 시대 초기까지 내내 사용 팽이형 토기, 미송리형 토기, 화분형 토기 등이 있으며, 빛깔은 주로 갈색을 띤다.

초기 덧띠새김무늬토기, 가락식 토기, 흔암리식 토기, 역삼동식 토기를 비롯하여 송국리식토기, 미송리식 토기, 화분형 토기, 팽이형 토기, 붉은 간토기가 있다. 청동기 시대 후기 즉 초기 철기시대로 가면 검은 간토기와 덧띠토기가 있다.

※ 덧띠새김무늬 토기(덧무늬토기는 신석기 초기, 덧띠토기는 초기 철기시대). 신석기 시대 말기부터 나타나는 새로운 양식의 토기로서 청동기 시대 가장 이른 시기(早期)를 대표한다. 이것은 신석기 시대의 덧무늬토기나 초기 철기 시대의 덧띠 토기(점토대 토기)와는 다른 새로운 양식의 토기이다.

덧띠새김무늬토기 <출처 : 교과서>

※ 미송리식 토기 : 평안북도 의주군 미송리 동굴에서 처음 발굴. 밑이 납작하고, 항하리 형태이며, 양쪽 옆으로 손잡이가 2개 달리고, 목부분이 V자 모양이다. 미송리식 토기는 고인돌, 거친무늬 거울, 비파형 동검과 함께 고조선의 특징적인 유물로 간주된다.

미송리식토기 <출처 : 우리역사넷>

※ 붉은 간토기(검은 간토기는 초기철기시대)

3) 청동기 출현
한국 청동기는 무기(武器)가 대부분이고, 그 외 공구(工具), 의기(儀器), 꾸미개〔裝身具〕, 차마구(車馬具)류가 있으며, 기하학무늬〔幾何學文〕가 주로 장식되어 있다.
① 청동검 : 비파형동검, 투겁창〔矛〕, 꺾창〔戈〕, 화살촉〔鏃〕
② 청동공구 : 부채모양도끼(자루에 기하학적 무늬) 손칼〔刀子〕, 끌〔鑿〕, 사(蠣)
③ 청동장식 : 거친무늬거울
④ 청동의기 : 원개형동기(圓蓋形銅器), 방패형동기(防牌形銅器), 검파형동기(劍把形銅器), 나팔형동기(喇叭形銅器) 청동방울(팔두령[八頭鈴]=팔주령[八珠鈴], 쌍두령)
⑤ 농경문청동기 : 농사짓는 모습이 그려진 청동기
⑥ 거푸집 : 청동 제품을 만드는 틀

특히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청동 유물은 청동검과 청동 거울이다. 청동검은 비파형 동검에서 점차 몸체가 가는 세형동검(초기 철기시대)으로 바뀌었다. 청동 거울로는 다뉴경이 많이 발견된다. 다뉴란 꼭지가 여러 개란 뜻이며, 거울 용도가 아니라 제사를 지낼 때 빛을 반사하는 등 종교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던 도구였다.

※ 비파형 동검(요령식 동검)은 초기 철기시대에는 세형동검(한국식 동검)으로
거친무늬거울은 초기 철기시대에는 잔무늬거울로 진전된다.

거푸집 : <출처 : 우리역사넷>

3. 청동기 시대 유적

청동기 시대의 유적지는 요령성과 길림성을 포함하는 만주지역과 한반도에 널리 분포되어있다.
청동기 시대의 집터를 비롯하여 고인돌, 돌널무덤, 돌무지무덤 등 당시의 무덤 등이 있다.

주요 유적지로는 평북 영변 세죽리, 함북 웅기군 서포항, 함북 무산군 호곡동, 황해도 송리시 석탁리, 평남 북창군 대평리, 경기도 여주군 흔암리, 경기도 미사리, 충남 서산군 해미면 휴암리, 충남 부여군 송국리, 전남 영암군 장천리, 전남 승주군 대곡리, 경남 거창군 대야리 유적이 있다.

1) 주거지
신석기시대는 바닥이 원형이 많았던 반면에 청동기 시대는 바닥이 사각형이 많고, 화로도 중앙(신석기시대)에서 가장자리로 옯겨졌고, 기둥도 신석기 시대보다 높고, 땅도 깊게 파지 않아 신석기시대보다 지상으로 올라왔다. 지붕은 나뭇가지와 억새 등을 엮어 만들었으며, 벼농사가 유행한 뒤로는 볏짚도 사용하였다. 집의 크기도 7~8명이 생활할 수 있도록 넓게 지었다.

마을도 넓어졌을 뿐만 아니라 부족 간의 정복 전쟁이 자주 일어나자 사람들은 이웃 부족이 침략하지 못하도록 외부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방지책도 있었으니 목책, 해자, 망루가 그것이다. 목책은 마을 주위에 울타리를 세우는 것이고, 해자는 마을 주위에 도랑을 파서 만든 연못이며,  망루는 높게 세워 주위을 살피는 곳이다.

2) 무덤
기원전 10세기 무렵 대륙으로부터 서북지방에서부터 고인돌과 같은 새로운 무덤 형태가 나타나게 된다. 신석기시대에도 일부 해안지방 등지에서 간단한 매장 유형이 확인된 바 있으나 이들은 구조물이라기보다는 시체를 묻은 뒤 둘레의 돌을 긁어모아 덮은 정도의 간단한 돌무지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나라 본격적인 무덤의 조성은 청동기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때의 무덤 유적은 고인돌(支石墓) 외에 널무덤(木棺墓, 積石木棺墓, 木槨墓), 돌널무덤(石棺墓), 독무덤(甕棺墓) 등이 있다. 이들 무덤들은 지역이나 시기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4. 청동기 시대의 생활

1) 벼농사의 시작
신석기 시대에는 조, 피, 수수 등 밭농사 중심이었지만, 청동기시대에 들어와서는 초기부터 벼농사가 보급되기 시작하였고, 농사짓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농산물 생산량이 많이 늘어났다.

2) 잉여농산물의 발생 → 빈부의 격차 → 계급 발생
청동기시대에는 농사짓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농산물의 생산량이 늘어나기 시작하여 이제 먹고 남을 정도로 잉여생산물이 생겼다.  많이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 즉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생겨났다. 부유한 자는 그 부를 이용해 더 많은 농사를 짓고, 더 많이 생산하고, 더 큰 부자가 되었다. 그렇게 늘어난 재산으로 권력을 얻어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우두머리 지배자가 부족마다 생겼다. 이 우두머리 지배자를 군장이라 한다.

 군장은 사회를 다스리기 위한 제도를 만들고, 다른 부족으로부터 필요한 물품을 빼앗기 위한 전쟁을 이끌었으며, 전쟁에서 이긴 부족은 진 부족의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기도 했다. 전쟁에서 이기면 노예와 식량을 얻을 수 있어 훨씬 더 부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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