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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송국리 유적

엠알페이지 2023. 10. 8.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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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군 송국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 유적이다. 
1975년 국립중앙박물관의 발굴조사로 알려지기 시작하여 1997년까지 여러 차례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결과 다수의 집터와 무덤들이 발견되었다.

출처 : 우리역사넷


이 유적으로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알 수 있다. 금강 유역 낮은 구릉 지대로 주변에는 넓은 평야 지대가 펼쳐져 있다.

 이 유적에서 조사된 집터는 평평하고 동그란 모양의 깊은 움집(둥근집터)과 평평하고 네모난 모양의 얕은 움집(네모난집터)이었다. 또 이곳은 나무 울타리나 도랑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것으로 보아 이곳은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집단으로 생활하였던 비교적 규모가 큰 마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둥근 집터는 30∼150cm 깊이로 땅을 파서(수혈식주거지) 만들었으며, 한쪽 벽을 얕게 파서 문을 만든 듯하다. 화덕자리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다수의 저장용 구덩이가 발견되었다. 바닥 중앙에 1m 내외의 긴 타원형 구덩이를 파고 그 구덩이 안에 몇 개의 둥근 구덩이를 만들었다. 

네모난 집터는 30cm 미만으로 땅을 판 반움집이나 지상식에 가까운 것으로 기둥구멍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주춧돌이 있는 발달된 집 형태를 하고 있다.

면적이 전반적으로 줄어들고 내부에 조명, 난방, 조리와 관련된 화덕이 보이지 않는다. 화덕이 보이지 않는 것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지만 집자리 면적이 줄어든 것은 농경사회에 들어서면서 생산ㆍ소비 단위에 변화가 나타났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면적이 큰 집에서 여러 세대가 공동 거주하던 방식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출처 : 우리역사넷


집터 안에서는 여러 가지 토기와 석기가 출토되었다.

토기로는 민무늬 토기가 많이 나왔고, 붉은 간토기(홍도)와 검은 간토기(흑도)도 나왔다. 민무늬토기는 납작한 밑, 긴 달걀형의 몸체, 목이 없이 아가리가 밖으로 약간 꺾인 모습을 하여 이전의 무문토기와 달라 송국리식토기라 불린다. 집터 서쪽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무문토기 가마터가 확인되었다.

석기로는 여러 가지 종류의 반달돌칼과 돌화살촉, 간돌검, 가락바퀴(紡錘車방추차), 돌칼, 돌도끼 등이 있다. 가락바퀴는 중세에 이르러 방차(紡車:물레)로 발전하였다. 

또 비파형 동검이 돌널무덤에서 출토되었는데, 비파형 동검이 한반도 남쪽에서 출토되었다는 점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부채꼴 모양의 청동도끼 거푸집도 출토되었다.

그 밖에 많은 양의 불탄쌀과 벽체에 세웠던 판자가 불탄채로 나오기도 하였다. 

묘제로는 고인돌(지석묘), 돌널무덤(석곽묘), 움무덤(토광묘), 독무덤(옹관묘) 등 다양한 유형이 나타난다.

송국리 유형 문화는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서부 지역에 집중되어있고, 경기도와 강원도 지역에서는 발견 예가 적으며, 북한 지역으로 가면 발견되지 않는다.

송국리 집터는 유물을 토대로 기원전 7∼6세기 전에 농경과 수렵에 기반을 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며,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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