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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입석, menhir)

엠알페이지 2023. 10. 23.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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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쭉한 자연석 또는 일부만을 가공한 기둥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또는 몇 개를 똑바로 세워 기념물 또는 신앙대상물 등으로 삼은 선사시대의 거석기념물이다. 입석(立石, menhir)이라고도 한다.

고고학에서 일컫는 선돌이란 선사시대, 특히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에 걸쳐 이루어진 유적에 한정시키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우리 나라는 고인돌에 비해 선돌의 숫자는 극히 적지만, 선돌의 분포는 한반도 전역에 미치고 있다. 형태를 보면 주로 둥근 뿔 모양의 것이 많고 비석모양, 뾰족한 돌기둥 모양 등 다양한 편이다. 남성의 성기를 닮은 것은 생식기능 숭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본다. 선돌의 윗부분에 사람 얼굴을 새긴 듯 일부 가공한 것들도 있고 남성과 여성을 다르게 새긴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후에 나무에 새긴 장승(將丞)으로 연결된다고 보기도 한다. 선돌에 볏집이나 새끼를 감아 신격화하여 마을 수호신(守護神)으로 모시는 곳도 있다.

선돌이 고인돌과 결합된 예는 보령 삼계리, 동곡리, 삼곡리, 대덕 교촌리, 청양 지곡리 등 충청도 지역에 많다. 연백 문창리처럼 탁자식고인돌 무덤군에 여러 개의 선돌이 함께 서 있는 곳도 있는데 선돌이 무덤구역을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한국의 선돌은 대체로 청동기시대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선돌은 민간신앙의 대상물인 숭배 기능과 농경에 대한 풍요, 그리고 경계의 기능이 섞여 있는 것 같다.

제천 입석리 선돌 (堤川 立石里 立石) <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아래는 문화재청의 제천 입석리 선돌 (堤川 立石里 立石)에 대한 설명이다.

이 선돌에서 유래하여 이 마을의 이름을 「입석리(立石里)」라 불리어지고 있으며, 고대사회 정복의 산물인 부곡(部曲)을 두어 입석부곡이 되었다가 근대에 천민집단이 정리됨에 따라 입석으로 변했고, 1914년 당곡리를 병합하여 입석리라 하여 송학면에 소속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선돌은 입석마을 입구 길 옆 가장자리에 세워져 있으며, 「선돌백이」라 부르고 있다.

선돌 축조와 관련된 전설과 기자사상(祈子思想)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하여오고 있으며, 마을에서는 주민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제의(祭儀)를 행하고 있어 수호적(守護的) 기능의 수호신으로서 민간신앙의 대상물로 섬기고 있어 민속학 및 국문학적으로 중요한 학술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선돌의 의미와 중요성을 인식한 주민들이 선돌을 보호·보존하기 위하여 1974년 자발적으로 「선돌회」를 조직하여 관리하며, 1986년부터 매년 음력 10월 중에 택일하여 『선돌祭』를 지내고 있으나 선돌의 기능·구조·학술적 의미 등에서 중원지방의 대표적인 선돌로 평가된다.

이 선돌은 3단으로 이루어졌는데 가장 아래는 높이 66㎝의 낮고 폭이 넓은 3개의 돌을 놓았고, 그 위에 높이 96㎝·너비 140㎝·두께 96~116㎝ 크기의 돌 3개를 올려 놓아 중앙부를 이루고 있으며, 가장 위에는 높이 245㎝·너비 258㎝·둘레 654㎝의 커다란 돌을 올려 놓아 7개의 돌을 쌓아 하나의 선돌 형태를 이루고 있는 매우 특이한 구조를 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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