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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무지무덤, 돌무지덧널무덤, 굴식 돌방무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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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무지무덤, 돌무지덧널무덤, 굴식 돌방무덤

엠알페이지 2023. 10. 24.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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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돌무지무덤

한자로는 석총(石塚), 또는 적석총(積石塚)이라고 한다. 고구려 초기(대체로 5세기 평양 천도 전)의 고분 양식이다. 청동기 시대부터 나타나나, 고구려에서 더욱 발달하였다. 돌무지무덤은 고구려에서 주로 만들었던 무덤 형태이다. 시신 위나 시신을 넣은 석곽(石槨) 위에 흙을 덮지 않고 돌을 쌓아 올린 무덤이다. 선사 시대부터 고구려ㆍ백제 초기에 나타난다.

자연석을 피라미드식으로 쌓아 올리고, 그 안에 목곽을안치하였다. 벽화는 없다.

대표적인 것이 장군총이다. 한성 시대 백제의 초기 고분(서울 석촌동 고분)도 돌무지무덤인데, 이것은 백제 건국의 주체 세력이 고구려의 한 갈래임을 말해 준다. 

2. 돌무지덧널무덤

통일 전 신라의 대표적 대표적인 무덤형식의 하나. 한자로는 적석 목곽분(積石木廓墳)이다.

구덩이를 파거나 땅 위에 돌을 깔고, 나무로 된 덧널(廓 - 곽)을 세운 다음, 그 안에 널(棺 - 관)을 넣고, 냇돌로 나무 널을 덮고 나서 다시 그 위를 흙으로 쌓아 올렸다.

지상 또는 지하에 상자 모양의 덧널〔木槨〕을 놓은 다음, 그 위에 냇돌을 쌓고 다시 흙을 덮어 봉분을 만든 것이다.

대체로 경주분지를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모두 덧널, 돌무지, 둘레돌, 봉토의 4부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덧널 위치에 따라 지상식, 반지하식, 지하식으로 구분된다. 대부분 지하식이며 지상식으로는 천마총, 황남대총, 서봉총. 금관총 등이 있다.

무덤의 크기나 출토유물로 보아 신라 왕과 귀족의 무덤인 것으로 보이며, 4세기 전반에서 6세기 전반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6세기 전반에 소멸되었다.

대개 돌무지 및 봉토의 규모가 크고 구조가 복잡하여 도굴(盜掘 - 문화재를 몰래 파 내는 행위)이 어렵기 때문에 부장품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일이 많다.

금관총, 천마총 등이 대표적이다.

3. 굴식 돌방무덤

굴식 돌방 위를 흙으로 쌓은 토총(土塚). 한자로는 횡혈식 석실분(橫穴式石室墳)이다.

사람이 서서 드나들 수 있을 만한 크기의 관을 넣는 돌방이 있으며, 입구와 널길(고분의 입구에서 시체를 안치한 방까지 이르는 길)이 있다. 고구려 후기(5세기 평양 천도 후) 고분은 대개 이 양식이다.

돌방과 널길 벽에는 두터운 석회를 칠하고, 그 위에 그림 물감으로 벽화를 그렸다.

벽화의 주제는 사신도, 건물의 모습, 생활 풍속 등 다양하다. 강서 대묘, 쌍영총, 각저총, 무용총 등이 대표적이다.

통일 신라 시대의 고분 양식도 굴식 돌방무덤이다. 다만 봉토(封土 - 흙으로 쌓아 올린 부분) 주위에 둘레돌을 두르고, 그 위에 12지 신상을 새기는 새로운 수법이 가미되었다.

이러한 양식은 그 후 고려, 조선의 왕릉에까지 계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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