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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흔적

동명왕(東明王) 이야기

엠알페이지 2006. 11. 5.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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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왕(東明王)

국사인고려본기(本紀)에말했다.


시조동명성제의성은고씨요휘(諱)는주몽이니이보다앞서해모수의 아들해부루가이미동부여로피해가고부루가죽자금와(金蛙)가왕위를이었다.


이때금와는태백산남쪽우발수(優渤水)에서한여자를만나물으니,대답하여,

"나는본시하백(河伯)의딸로이름은유화(柳花)인데여러아우들과나와놀고있을때에한남자가나타나자기는천제의아들해모수(解慕漱)라하고나를웅신산(熊神山)밑압록강가의집속으로유인하여남몰래정을통하고가버린뒤돌아오지않으므로 부모는내가중매없이혼인한것을꾸짖어서이곳으로귀양보낸것이 옵니다."라했다.

<단군기에는단군이서하의하백의딸과친하여아들을낳아부루라이름하였다하였는데

지금이기록을상고해보면해모수가하백의딸과정을통해서후에주몽을낳았다고했다. 단군기에는아들을낳아부루라했다했으니부루와주몽을배다른형제일것이다.>


금와는이상하게여겨그녀를방속에가두어두었더니햇빛이방속을비쳤다. 그녀가몸을피하자 햇빛은다시쫓아와비쳤다.이로인해서태기가있어알하나를낳으니그크기가닷되들이말(斗)만했다.


왕은그것을버려개와돼지에게주니모두먹지않고 또길에버리니소와말이그것을피해가고,들에내다버리니새와짐승이덮어주었다.왕이그것을쪼개보려했으나,쪼갤수가없어그어미 유화에게되돌려주었다. 어머니는이알을천으로싸서따뜻한곳에놓아두니한아이가껍질을깨고나왔는데골격과외모가영특하고기이하였다.


나이겨우일곱살에기골(氣骨)이뛰어나서범인(凡人)과달랐다.스스로활과화살을만들어백번을쏘면백번다맞추었다. 그나라의풍속에는활을잘쏘는사람을주몽이라하였는데이런연유로해서그는주몽이란이름을얻었다.


금와에게아들일곱이있어항상주몽과더불어놀았는데기능이따르지못하였다.장자(長子)대소(帶素)가왕에게말하기를"주몽은사람이나은자식이아니니일찍없애지않으면후환이두렵습니다."했다.

왕은말을듣지않고주몽으로하여금말을기르게하였다.주몽은좋은말을알아보고적게 먹게하여여위게하고둔한말은잘먹여살찌게하였다.왕은살찐말은자기가타고 여윈말은주몽에게주었다.

왕의여러아들과신하들이장차주몽을죽이려고꾀하니,주몽의어머니가이를알고주몽에게말하기를"나라안사람이장차너를죽이려고하니너의재주와지략으로어디간들못살겠느냐.빨리도망가거라."했다. 이에주몽은오이(烏伊)등세사람을벗으로삼아엄수(淹水)<지금자세하지않다>에이르러강물을보고말하기를 "나는천제(天帝)의아들이며 하백의손자다.오늘도망가는데뒤쫓는자들이거의따라오게 되었으니어찌허면좋을 꼬"했다. 이때에고기와자라가다리를만들어주어건너게한다음흩어지니추격하던기마병은건너지를못하였다.


주몽은졸본주(현도군의경계)에이르러도읍을정하였으나미처궁실을지을겨를이없어 다만 집을비류수(沸流水)위에지어거기에기거하면서국호를고구려라고하였고, 그로인하여고(高)로서성을삼았다. <본성은해(解)였는데지금자기가천제의아들로햇볕을받고낳다하여스스로고로서성을삼았다.>
이때나이가22세였는데한나라효원제(孝元帝)건소(建昭)2년갑신(甲申)에즉위하여왕이라칭하였다. 고구려가가장융성하던때는21만508호나되었다.

<삼국유사제1권기이(紀異)제1김봉두편역(교문사,1993)PP.56∼58>


*이를 바탕으로하여이광수가[사랑의동명왕]을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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