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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흔적

옥천 석탄리 선돌

엠알페이지 2008. 4. 25.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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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은 신석기시대나 청동기시대처럼 선사시대의 유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역사시대에 들어와서도 선돌은 의미 있는 대상이었다. 무엇보다도 왕성한 생산력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렇기에 선돌은 마을 공동체 신앙의 중요한 신체(神體)로서 역할을 했다.

충북 옥천군 동이면 석탄리에는 3기의 선돌이 있는데, 이 중마을 입구의 우측 언덕에 위치한 여근석 선돌은 마치 배가 부른 임신부의 모습을 띠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마치 사람의 배에 해당하는 부분에 직경 84㎝의 둥근 원이 음각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임신부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왜 돌의 중간부에 원을 형상화했을까.

과연 그것은 단순한 표현이었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원의 형상은 임신을 뜻하는 것으로서 달의 상징일 가능성이 높다.

충북대학교에서 발간한 ‘옥천군의 선사유적·유물’에는 태양숭배사상의 한 표현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여성의 임신한 모습을 상징화했다면 그것은 분명 달의 상징이다.

한국의 기층문화가 달을 근간으로 삼고 형성되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런 추정은 함부로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석탄리 여근석 선돌>

<석탄리 여근석 선돌 밑부분의 원>


여성의 달 상징은 생산 기능과 결부돼 만들어진 관념이다.

특히 달은 여성의 월경(月經)을 관장하는 존재로 알려져 왔다.

월경을 달거리라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달이 여성을 관장하며, 여성신이라는 점을 잘 알 수 있는 예로 ‘개보름쇠기’를 들 수 있다.

정월 보름에는 개에게 밥을 주지 않는다.

개기월식과 같은 달의 변화는 개가 물어뜯기 때문이라는 전설이 있다.

달의 크기가 줄어드는 것은 풍요로운 생산에 큰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달의 정기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 개에게 밥을 주지 않고 굶긴다는 것이다.

만약 정월 보름에 개에게 밥을 준 여자는 자신의 생산력을 빼앗긴 꼴이 된다고 생각했다.

정월 대보름에 마을마다 마을 제의가 행해진다.

그 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것이다.

이 마을 제사가 끝나면 대동놀이가 행해진다.

왜 이들 놀이가 정월 보름날 행해지는가.

바로 달의 정기가 가장 강력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정기를 받게 되면 여성의 생산력도 높아질 뿐만 아니라 토지의 생산력도 강화된다고 믿었다.

만월이 떠오르는 때에 여성들의 집단놀이가 행해진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전남 지방의 강강술래나 경상도의 해안 지역에서 행해진 ‘월월이청청’ 등은 좋은 예이다.

이런 놀이는 여성만이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놀기 위한 목적만을 갖고 있지 않다.

바로 둥근 보름달의 정기를 한몸에 받아 생산력을 강화하는 여성의 집단놀이였던 것이다.

석탄리 마을에서 남자와 여자로 생각하는 선돌에 금줄을 치고 동제 때 치성 대상으로 모시고 있는 것도 그런 풍요 기원의 목적을 지녔던 것이다.
[2004.07.13 (화) 세계일보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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