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아
내사산(內四山)과 외사산(外四山) 본문
내사산(內四山)과 외사산(外四山)
태조 3년(1394) 10월 25일 지금의 수도로 정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 600여 년간에, 서울은 그 영역에 있어서나 면모에 있어서, 그리고 기능에 있어서 많은 변천이 있었다.
이러한 변천을 평면적으로 보면 현재의 광화문 비각을 기점으로 하는 북위 37도 34분, 동경 126도 59분의 위치를 중심으로 전시대를 통하여 반경적(半徑的) 방사선상으로 확대 ·발전하여 왔다.
그러므로 한마디로 서울시라고 하지만 시대에 따라, 그 영역 범위가 대단히 다르다.
여기서는 14세기의 '천도 당시의 서울'과 '오늘의 서울'로 크게 구별하고 양자를 다같이 말할 때에는 그냥 '서울'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천도 당시의 서울은 대체로 도성내를 말한다.
이를 지형적으로 보면
북쪽의 백악산(북악산, 342m)
동쪽의 낙타산(125m),
남쪽의 목멱산(남산, 265m),
서쪽의 인왕산(338m)의
이른바 내사산(內四山)으로 둘러싸인 분지로서 약 500만평에 불과한 지역이었다.
오늘의 서울시는 그보다 훨씬 넓은 지역을 차지하는데, 대체로
북쪽의 고양시와의 경계에 높이 솟은 북한산(836m)
서쪽의 고양시 및 김포시와의 경계에 절벽을 이룬 덕양산(행주, 125m),
남쪽의 과천시 · 안양시와 경계를 이룬 관악산(829m),
동쪽의 구리시와 경계를 이룬 용마산(348m)의
이른바 외사산(外四山)으로 둘러싸인 약 627㎢의 넓은 지역을 말하게 되었다.
전술한 비각을 중심으로 전자는 반경 약 2㎞ 이내가 되고,
후자는 반경 약 8㎞ 이내의 지역이 된다.
내사산(內四山)은 성벽으로 연결되어 서울 방어의 제1선이라고 하면
외사산(外四山)을 연결하는 선은 제2선에 해당된다.
그리고 이런 제1선과 제2선 사이에 한강이 서울시의 동남쪽을 자연호와 같이 흘러 서울의 방어를 더욱 튼튼히하여 주어, 서울이야말로 천연의 요새지라 하겠다.
한양 천도 당시의 학자 권근도 '하늘이 만들어준 견고한 성지'라 하였다.
- 서울육백년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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