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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흔적

김춘추와 문희

엠알페이지 2021. 3. 12.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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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추와 문희]

삼국유사의 기록이다.

김유신((신라에 투항한 금관가야 구해왕의 증손)에게 문희, 보희 두 누이가 있었다. 보희가 어느 날 西岳(서악)에 올라가 소변을 보았는데, 서라벌 전역이 소변에 모두 잠겨버렸다는 꿈을 꾸었는데 그 꿈 이야기를 들은 문희는 비단치마를 주고 그 꿈을 샀다.

이로부터 열흘 뒤에 김춘추(진지왕의 손자, 후에 태종무열왕)는 김유신과 함께 김유신의 집 앞에서 축국(蹴鞠=공차기놀이)을 하게 되었다. 거기서 김유신은 김춘추의 옷깃을 일부러 밟아 끊어지게 한 다음 자기 집에서 옷을 수선할 것을 권하면서 집안으로 들이고, 누이등생들을 불러 옷을 꿰매게 했다. 보희는 사소한 일로 귀한 분을 대할 수는 없다며 사양했고, 갑자기 문희가 나서서 자기가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문희가 옷을 꿰매주게 되었다. 이 일로 두 사람은 가까워졌고, 김춘추는 김유신의 집을 자주 드나들었으나 정식으로 혼인을 하려 하지 않았다.

이에 김유신은 '남편도 없이 부모도 모르게 임신하였다'하며 문희를 불태워 죽일 것이라고 소문을 냈다. 그리고 나서 선덕여왕(일설에는 선덕공주)이 남산에 오르는 날을 택하여 마당에 땔 나무를 쌓아놓고 불을 질러 연기를 피웠다. 산 위에서 그 연기를 본 선덕여왕이 저 연기가 무슨 연기냐고 묻자 신하가 김유신이 자기 누이를 부태우려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선덕여왕이 그 까닭을 묻자 신하는 남편도 없이 임신하였다는 이유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선덕여왕이 '누가 임신시켰다는 말인가?'하고 묻자, 마침 선덕여왕을 따라 나왔다가 안색이 질린 김춘추를 발견한 선덕여왕은 '네 짓이로구나. 당장 가서 그 누이를 구하라.'하였다. 그후 김춘추는 문희와 혼례를 올리게 되었다.

다분히 김유신의 의도로 이루어진 이 혼인은 왕위계승에서 배제된 진지왕계와 옛 금관가야계 귀족 간에 정치군사적 결합이 이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진지왕계(김용춘, 김춘추)는 김유신계의 군사적 능력을, 금관가야계(김서현, 김유신)는 진지왕계의 정치적 위치를 각자의 목적달성을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었고, 이러한 상호 이익에 입각해 이루어진 정치적 결탁은 신라 중대(中代) 왕실의 진골귀족 내에서 하나의 새로운 집단을 형성하게 되어 성골계로 대표되는 기존 구 귀족집단의 견제와 반발을 받았다.

※ 태종무열왕(김춘추)은 부계가 진지왕의 아들 김용수이고, 모계가 진평왕의 딸 천명공주로 양쪽 모두가 왕족인 성골에 속했지만, 무열왕 이후 문무왕(김춘추와 문희가 낳은 아들, 최초의 진골 왕)부터는 부계만이 왕족인 진골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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