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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원 이씨 (慶源 李氏)

엠알페이지 2007. 9. 15.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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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원 이씨 (慶源 李氏)


고려 귀족 사회에서는 혼인 관계가 매우 중시되었다.
통혼의 대상이 되는 가문의 정도가 자신과 가문의 출세에 직결되기 때문이었다.
고려에서 최고의 가문은 왕실이었다.
그러므로 모든 귀족 가문은 왕실과의 혼인 관계를 맺으려 하였고, 또한 문벌 간에 상호 중첩되는 혼인 관계를 맺었다.
왕실 외척으로최고의 문벌을 이룬 대표적 가문이 경원 이씨였다.


경원(인주) 이씨 가문을 일으킨 사람은 이자연(李子淵)이었다.
그는 세 딸을 문종의 비로 납비(納妃)하였고, 그의 세 아들의 딸이 각각 선종, 순종의 왕비로 납비되었다.
그의 손자 이자겸(李資謙)은 한 딸은 예종비로, 두 딸은 인종비로 납비하였으며, 당대의 명문 귀족들과도 인척 관계를 맺었다.
그리하여 경원 이씨는 10여 대에 걸쳐 5명의 수상과 20명에 가까운 재상을 배출하여, 사서에서는 이 집안을 벌열(閥閱), 또는 해동 갑족(海東甲族) 등으로 일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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