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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흔적

탕평채(蕩平菜)

엠알페이지 2009. 3. 27.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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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평채 - 드셔보신 분 있으신가요?


탕평채(蕩平菜)


봄이 되어 먹는 계절음식에 탕평채라는 것이 있다. 이는 녹두묵에 고기볶음, 미나리, 김, 지단등을 섞어 만든 묵무침을 말한다고 한다.

당시 봄철의 입맛을 돋구어 주는 음식으로 진달래화전, 진달래화채, 향애단(쑥경단)과 함께 삼짇날의 절식이었다고 한다.

영조 때 여러 붕당(당파)끼리 서로 잘 협력하자는 탕평책을 논하는 자리의 음식상에 처음으로 등장하였던 음식으로 탕평책(蕩平策)에서 유래되어 탕평채(蕩平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탕평책(蕩平策)은 붕당(당파)의 어느 편에도 들지 않고 모든 일을 공평하게 처리하자(蕩蕩平平)는 것으로 영조, 정조때 정책으로 실시된 바 있다.

붕당은 벼슬을 얻기 위해 고향과 스승 등을 끈으로 하여 모인 사람들의 집단이며(현대판 정당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음), 최초의 붕당은 선조때 동인과 서인이었다(1575년 동서분당).

하지만탕평정국에도 불구하고 당파간의 정쟁에 의해 영조는 아들을, 정조(이산)는 아버지를 잃게 되는 슬픔을 겪게 된다.

즉 남인·소론 등이 영조와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사도세자(영조의 아들, 혜경궁 홍씨의 남편, 정조의 아버지)를 앞세워 보수적인 성격의 당시 집권세력인 노론 정권의 전복을 꾀하려다가 실패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1762년)

이 사건을 계기로 사도세자를 죽인 정당성과, 사도세자와 정조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노론이 다시 시파(時派)와 벽파(僻派)로 나누어지게 된다.

이런 식으로 분당에 분당을 거듭해오면서 지속되어온 붕당정치는 완전히 근절되지 못한 채 정조 이후에 나타나게 되는 세도정치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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