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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아
고종의 강제퇴위
고조선의 세력 범위 비파형 동검과 고인돌(북방식)은 만주와 북한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굴되어 고조선의 세력 범위를 짐작하게 해 준다.
고조선(古朝鮮) 한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국가. 1. 명칭 처음 사서에 등장할 때 '조선'이라 하였다. 고조선이란 명칭은 삼국유사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이 때 고조선(왕검조선)이라 한 것은 기자조선이나 위만조선과 구분하기 위해서였다. 그 뒤 제왕운기에서는 단군조선을 전조선(前朝鮮), 기자조선을 후조선(後朝鮮)이라 하였다. 고조선이란 명칭이 널리 쓰여진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였다. 이씨조선과 구분되는 고대의 조선이란 의미이다. 구체적으로 고조선이 포괄하는 범위에 대해서는, 서기전 2세기 초에 일종의 정변을 통해 등장한 위만조선 이전 시기에 존재한 조선만을 칭하는 경우와, 위만조선까지를 포괄해 고조선이라 하는 경우로 나누어진다. 정치사적인 측면에서는 전자를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위만조선의 사회와..
고인돌(지석묘, dolmen)선사시대의 돌무덤. ‘지석묘(支石墓)’와 같은 뜻이며 거석문화에 속한다. 성격은 무덤으로서의 구실이 크다.우리 나라의 고인돌은 거의 국토 전역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이제까지 보고되지 않은 함경북도지방뿐만 아니라 강화도(하점면 부근리 지석묘, 사적 제137호) 같은 해안 도서나 또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제주도와 흑산도에서도 발견되고 있다.대체적으로 이들은 서해 및 남해의 연해지역과 큰 하천의 유역에 주로 분포되어 있다. 특히, 전라도·황해도에 가장 밀집되어 있다. 그러나 동해지방으로 가면 그 분포가 희박해지며 산악지대에서 가끔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의 위치는 서해로 흘러가는 강줄기 근처로, 결국 고인돌은 서해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우리 나라의 고인돌은 거의 ..
고분벽화(古墳壁畵)고대 무덤의 내부 벽에 그려진 그림.왕과 귀족 등의 지배층 무덤에 그려졌으며, 죽은 사람의 사후세계를 위해 제작되었다. 주벽에는 현실생활과 관련된 내용을, 천장에는 하늘세계와 관련된 내용을 그려넣어 무덤 안을 하나의 축소된 우주로 꾸몄다. 한대(漢代)부터 그려지기 시작하여 4세기부터 7세기 중엽 사이에 고구려에서 가장 성행했으며, 고대회화의 양식과 함께 당시 사람들의 내세관(來世觀)을 비롯한 사상, 종교, 각종 생활풍속 등을 담고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지금까지 발견된 벽화가 그려진 무덤은 모두 93기로 그중 81기는 고구려의 것이다.
고분(古墳) 고분(古墳)이란 글자 그대로 옛 무덤을 뜻하기도 하지만 고고학에서는 개념적으로 엄격히 한정해 특정 시기의 무덤양식을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 넓은 의미에서 고분이란 과거 사회에서 죽은 이를 위해 수행된 매장의례가 물질적인 증거로 남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령 양전동 알터의 바위그림(암각화) 보물 제605호. 태양을 상징하는 동심원, 십자형, 삼각형 등의 추상적인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져 있는 바위 그림. 동심원은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 바위 그림 유적은 다른 지역의 청동기 시대 농업 사회에서 보이는 태양 숭배와 같이 풍요로운 생산을 비는 제사 터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고려자기(高麗瓷器) 고려시대 때 만든 도자기. 한국의 도자기는 고려 건국 초인 10세기에 비로소 자리가 잡혔다. 토기가 주류를 이루던 삼국시대나 통일신라로 이어져오는 가운데서도 7세기경부터 연유계 시유도기(, 회유계 경질시유도기의 오랜 전통이 있었다. 이러한 바탕이 고려자기가 발달하는 터전이 되었다. 국내의 자체적인 노력과 발전도 있었지만, 중국 도자기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고려자기라면 흔히 청자를 연상하게 된다. 그것이 고려시대 귀족들의 기호에 맞아, 많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많이 전해지고 있다 고려청자(高麗靑磁) 고려의 미술에서 가장 발달한 분야는 공예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도자기 공예가 가장 발달하였다. 고려에서는 신라 토기의 전통 위에 송 나라 자기의 영향을 받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