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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아
동시(東市)509년(지증마립간 10)에 궁성의 동쪽에 만든 시장. 서시(西市)695년(효소왕 4) 경주에 설치된 시장의 하나. 남시(南市)695년(효소왕 4) 경주의 남쪽에 설치한 시장의 하나. 동시전(東市典)신라 지증왕 9년 경주에 설치된 동시(東市)의 업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만든 관청.남시전(南市典)신라시대 시장을 관리하던 관청(695-935)서시전(西市典)신라시대 서시(西市)의 업무를 관장한 관청.
선사시대와 역사시대일반적으로 선사 시대와 역사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은 문자 사용의 여부이다. 선사 시대는 문자를 사용하지 못했던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를 말하고, 역사 시대는 문자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청동기 시대 이후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철기 시대부터 문자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정일치(祭政一致) 신(神)을 대변하는 제사장(祭司長)에 의해 다스려지는 국가 또는 정치체제. 즉, 종교와 정치적 권력이 분리되지 않고 한 사람에 의해 집중된 정치체제가 제정일치사회인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세속적인 권력에 만족하는 정치지배자들과 종교전문가인 제사장들이 나누어지는데, 점차 힘과 권력은 세속적인 정치지배자나 왕에게 귀속되면서 종교도 그 밑에 예속된다. 한국의 경우는 전부족이 참여하는 큰 집단행사였던 부여.고구려의 제천의식(祭川儀式)에서 제정일치의 사회형태를 엿볼 수 있다. 우리 나라는 처음에는 종교가 제정일치(theocracy)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고 생각되지만 점차 제정(祭政)의 분리가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그 시기는 별읍(別邑)이나 종교전문가인 천군(天君)이 등장하는..
신단수(神壇樹)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신성한 나무.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그 기록이 나타나는데 ≪삼국유사≫에 의하면 환웅이 3,000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정에 있는 신단수 아래에 내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왕운기≫의 기록은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3,000의 무리가 3,000의 귀신으로, 단(壇)이 단(檀)으로 다르게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커다란 차이는 두 기록에서 나타나는 신단수에 관한 관념의 차이이다. ≪삼국유사≫에서는 “언제나 단수 아래에서 웅녀가 빌어 아기 가지기를 원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반면에 ≪제왕운기≫에서는 “웅이 그 손녀로 하여금 약을 마셔 사람의 몸을 가지게 한 뒤 단수신과 혼인하여 생남하게 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삼국유사≫의 신단수가 영험이 있는 기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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