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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아
풍백(風伯) : 바람의 움직임을 맡은 신(神). 風神 우사(雨師) : 비를 내리게 하거나 그치게 하는 신(神) 운사(雲師) : 구름의 움직임을 맡은 신(神) 환웅이 풍백·우사·운사를 거느리고 하강했다는 기록은 이미 고조선 사회가 물에 의존하는 본격적인 농경사회로 진입했음을 알려준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신단수(神壇樹)는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桓雄)이 지상으로 처음 내려온 곳에 있는 나무로 신목(神木) 이다. 신단수가 자라는 지역을 신시(神市)라고 하였다. 신시(神市)는 환웅이 웅녀와 결혼하여 단군을 낳고, 단군이 고조선을 세워 평양에 수도를 두기까지의 중심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천부인(天符印) 국조 단군왕검(檀君王儉)이 한웅천왕(桓雄天王)으로부터 받아서 세상을 통치하였다는 세 개의 인(印)을 말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처음 그 기록이 보인다. 대종교의 '한단고사(桓檀古史)'에는 거의 어디에나 천부삼인(天符三印)에 관한 기록이 나타나 있으나 그 형태에 관해서는 언급한 곳이 없다. 그러나 옛날 역사를 참작하여 볼 때 단군의 개국이념과 천부삼인과는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있다. 그 내용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거나 언급한 바는 없지만 여러 가지로 고찰하건대, 천(天)·지(地)·인(人) 삼재(三才)와 원(○)·방(□)·각(△) 삼묘(三妙)와 성(性)·명(命)·정(精) 삼진(三眞)과 인(仁)·지(智)·용(勇) 삼달(三達)의 표상(表象)으로 추정된다.
옛날에 환인(桓因:하느님)의 서자(庶子) 환웅(桓雄)이 인간세상에 뜻을 두었는데, 환인이 천부인(天符印:신의 권한을 상징하는 부적과 도장)을 주고 인간세상을 다스리게 하였다. 이에 환웅이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太白山:지금의 묘향산) 꼭대기의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내려왔으니 이곳을 신시(神市)라 했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수명,질병,형벌,선악 등과 인간의 삼백 예순 가지나 되는 일을 주관하여 인간 세계를 다스려 교화시켰다. 이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늘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이에 환웅이 신령스러운 쑥 한 심지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이것을 먹으며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사람이 될 것이라 했다. 곰은 이를 잘 지켜 21일..
1. 명도전(明刀錢) 명도전은 중국 연(燕)나라에서 만든 칼 모양의 청동 화폐로 전국 시대 말기부터 진(秦)나라 때에 걸쳐 사용되었다. 중국의 제(齊, 기원전 1046년~기원전 221년), 연(燕, 기원전 11세기~기원전 222년), 조(趙, 기원전 1046~기원전 487)에서 사용하던 화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단지나 나무 상자에 담긴 채 발굴되는 경우가 있어 가치의 저장 수단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중국 허베이 성과 한국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다. 2. 반량전(半兩錢) 반량전은 진나라 시황제 때 만들 사용하였다. 가운데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는 원형이며, 둘레의 테는 없고, ‘반량(半兩)’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중국의 진(秦, 기원전 221~기원전 206), 한(漢, 기원전 202년~220년) ..
신석기 시대에 농경과 정착 생활을 통해 자연의 섭리를 생각하면서 형성된 원시 신앙이다. 애니미즘(Animism)은 모든 자연물이나 자연 현상에 정령이 있다고 믿는 것이며, 그중에서도 태양과 물에 대한 숭배가 으뜸이었다. 샤머니즘(Shamenism)은 인간과 영혼 또는 하늘을 연결시켜 주는 존재인 무당(Shamen)과 그 주술을 믿는 것이다. 토테미즘(Totemism)은 자기 부족의 기원을 특정한 동식물과 연결시켜 그것을 숭배하는 신앙이다.
1. 철기 시대에 나타난 널무덤과 독무덤 철기 시대에 이르면 청동기 시대의 거대한 고인돌 같은 것은 더 이상 만들지 않고, 대신 흙구덩이를 파고 구덩이 안에 나무로 된 널을 댄 다음 그 안에 시신을 묻는 널무덤이나 항아리를 관으로 이용한 독무덤이 새롭게 나타났다. 2. 사각형 벽을 만들어 시신을 넣는 널무덤 한반도 전역에서 고인돌과 돌널무덤이 한창 만들어지고 있을 때 큰 강 유역의 일부지역에서는 새로이 널무덤(木棺墓)이라는 묘제가 등장하게 된다. 당시까지의 무덤 구조가 주로 돌로 이루어진 石墓였다고 한다면 이 때부터 무덤에 본격적으로 나무가 사용되어 이후 역사시대에 이르러서는 무덤의 주요한 재료가 되는 것이다. 사용된 장구에 따라 널무덤(木棺墓)과 덧널무덤(木槨墓)로 나뉜다. 널무덤은 기본적으로 땅에 구..
1. 돌무지무덤 한자로는 석총(石塚), 또는 적석총(積石塚)이라고 한다. 고구려 초기(대체로 5세기 평양 천도 전)의 고분 양식이다. 청동기 시대부터 나타나나, 고구려에서 더욱 발달하였다. 돌무지무덤은 고구려에서 주로 만들었던 무덤 형태이다. 시신 위나 시신을 넣은 석곽(石槨) 위에 흙을 덮지 않고 돌을 쌓아 올린 무덤이다. 선사 시대부터 고구려ㆍ백제 초기에 나타난다. 자연석을 피라미드식으로 쌓아 올리고, 그 안에 목곽을안치하였다. 벽화는 없다. 대표적인 것이 장군총이다. 한성 시대 백제의 초기 고분(서울 석촌동 고분)도 돌무지무덤인데, 이것은 백제 건국의 주체 세력이 고구려의 한 갈래임을 말해 준다. 2. 돌무지덧널무덤 통일 전 신라의 대표적 대표적인 무덤형식의 하나. 한자로는 적석 목곽분(積石木廓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