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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아

청동기시대에 청동으로 만든 무기이다. 동검의 모양이 비파와 비슷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 동북지방에 있는 요하(遼河)를 중심으로 한 요령지방(遼寧地方)에 주로 분포하기 때문에 요령식 동검이라고도 하며, 광복 전에는 ‘만주식 동검’으로 불렸다. 학자에 따라서는 부여 송국리에서 출토된 예에 따라 ‘부여식 동검’이라고도 하며, 형태에 따라 ‘곡인청동단검(曲刃靑銅短劍)’으로 부르기도 한다. 한반도 내에서는 현재까지 약 30여 자루가 알려져 있다. 함경도지방을 제외하고 거의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주로 서부지방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이 비파형동검문화는 고조선 전기의 역사를 상징하는 유물이다. 한국식 동검(細形銅劍)문화는 이 동검문화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 확실하다. 부여의 송국리 석관묘에서는 마제석..

청동기시대 전기의 대표적인 마을 유적이다. 서울대학교박물관과 고고인류학과가 1972년부터 1978년까지 7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집자리 16기가 발굴된 유적지이다. 유적 연대는 출토된 유물과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치 결과 기원전 8~6세기 무렵의 주거지이다. 위치는 경기도 여주시 점동면 흔암리 산2-1번지이고, 1995.8.7에 경기도기념물 제155호로 지정되었다. 집자리는 긴 네모꼴이며, 규모는 11.6~42 평방미터로 다양하다. 집자리 내부에서는 화덕 자리와 기둥 구멍, 저장 구덩이가 조사되었다. 화덕 자리는 집자리 중앙에 놓이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한쪽에 치우쳐 있다. 남성과 여성의 작업 공간이 나뉘어져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즉 화덕 자리에 가까운 공간에서 여성들은 주로 요리와 방직 ..

충남 부여군 송국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 유적이다. 1975년 국립중앙박물관의 발굴조사로 알려지기 시작하여 1997년까지 여러 차례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결과 다수의 집터와 무덤들이 발견되었다. 이 유적으로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알 수 있다. 금강 유역 낮은 구릉 지대로 주변에는 넓은 평야 지대가 펼쳐져 있다. 이 유적에서 조사된 집터는 평평하고 동그란 모양의 깊은 움집(둥근집터)과 평평하고 네모난 모양의 얕은 움집(네모난집터)이었다. 또 이곳은 나무 울타리나 도랑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것으로 보아 이곳은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집단으로 생활하였던 비교적 규모가 큰 마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둥근 집터는 30∼150cm 깊이로 땅을 파서(수혈식주거지) 만들었으며, 한쪽 벽을 얕게 파서 문을..
서울특별시 송파구 가락동 일원에 위치한다. 1963년 고려대학교 인류·고고회가 학술 조사의 일환으로 발굴조사하였다. 한강 유역에서 2∼2.5㎞ 떨어진 한강 지류 변의 구릉지에 해당하는데 현재는 대부분 개발되어 원지형은 남아 있지 않다. 유적 주변으로는 신석기∼원삼국시대의 미사리유적과 암사동·일원동·명일동 유적이 있다. 집자리〔住居址〕는 1기가 조사되었는데, 동서 방향을 장축으로 하고,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다. 크기는 10×7m로 조사자는 긴 쪽을 둘로 나누어 원래 연접 축조한 2기로 추정한 바 있다. 내부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출토 유물은 화분형토기(花盆形土器), 항아리모양토기〔壺形土器〕 등의 토기류와 돌낫〔石鎌〕, 돌화살촉〔石鏃〕, 송곳〔錐〕, 숫돌〔砥石〕, 가락바퀴〔紡錘車〕등의 석기류가 있다. 출..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집터 유적지이다. 신석기시대 대표적인 유적인데 지금까지 확인된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유적중 최대의 마을단위 유적이다. 3개의 문화층이 확인되었고 20여 기의 집터와 딸린시설, 돌무지시설이 드러났다. 서울 암사동 유적은 한강이 곡류하는 지점에 있으며, 강 건너에 아차산이 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인해 세상에 알려졌고, 여러 차례 불굴 조사를 거쳐 약 50여 기의 신석기 시대 집터와 3개의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방사선탄소측정에 따르면 B·C 4,000∼3,000년기에 걸친 유적이다. 지금으로 부터 약 6,000년 전의 유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한반도의 중서부 지방을 대표하는 빗살무늬토기를 비롯해 갈돌과 갈판, 그물추, 불에 탄 도토리 등이 출토되어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미송리식 토기 청동기 시대 민무늬 토기의 한 형태이다. 1959년 평북 의주군 미송리 동굴 유적에서 발견되어 이름을 미송리식 토기라고 한다. 손잡이가 있고 적갈색인 것이 특징이다. 밑이 납작하고, 항아리 양쪽 옆으로 손잡이가 하나씩 달리고, 목이 넓게 올라가서 다시 안으로 오므라들고, 표면에 집선(集線)무늬가 있다. 형태는 밖으로 벌어진 긴 목을 가진 항아리이다. 주로 한반도 북부 즉 청천강 이북, 요령성과 길림성 일대에 분포한다. 이 토기는 고인돌, 거친무늬 거울, 비파형 동검과 함께 고조선의 특징적인 유물로 간주된다. 특히 미송리식 토기와 비파형 동검의 분포 지역은 고조선의 영역과 일치한다. 미송리식 토기는 라오둥 지역에서는 무덤에서 출토되고, 압록강과 청천강 유역에서는 주거지와 무덤에서 출토되며, ..

중부지방의 토기는 출현 시대에 따라 가락식 토기, 역삼동식 토기, 흔암리식 토기, 송국리식 토기가 있다. 좌로부터 가락식 토기, 구멍무늬 토기(역삼동식 토기), 송국리식 토기이다. 1. 가락식 토기 신석기시대 말엽부터 청동기시대 전기금강 유역(호서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민무늬토기이다. 토기의 입술을 겹아가리로 만들고 그 위에 짧은빗금무늬, 격자무늬, 거치무늬를 새긴 것이 특징이다. 1963년 고려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한 서울가락동유적에서 출토되었다. 적갈색을 띠고 있는 낮은 火度에서 구운 토기이다. 2. 구멍무늬 토기(역삼동식, 흔암리식 토기) 역삼동 주거지 유적에서 구멍무늬 토기, 즉 공렬문토기가 발견되었는데, 이를 역삼동식 토기라고 부른다. 구멍무늬토기는 아가리 아래쪽에 구명무늬를 일정한 간격으로..

● 붉은 간토기 그릇 형태가 완료된 뒤 토기의 표면에 산화철(酸化鐵)의 붉은 안료를 바르고 매끄러운 도구로써 문질러 소성한 토기를 말한다. 홍도(紅陶), 단도마연토기(丹塗磨硏土器), 적색마연토기(赤色磨硏土器)라고도 한다. 민무늬토기 형식의 하나로 무덤의 껴묻거리(副葬品)로서 출토되는 예가 많아 의례용기(儀禮容器)등 특수 용기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청동기시대 전 시기에 걸쳐 출토되며, 특히 송국리문화로 대표되는 청동기시대 후기에 가장 성행하였다. 붉은간토기로 출토지는 알 수 없다. 고운 바탕흙을 사용하여 만든 후 표면에 산화철을 바르고 잘 문질러 구웠기 때문에 붉은 광택이 돈다. 청동기시대 붉은간토기는 바리, 대접, 항아리, 굽다리접시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이 유물은 바닥이 둥근 항아리 형태로 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