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국사써브노트 (365)
히스토리아
내상왜와의국제무역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 동래의 상인 내상(內廂)고려시대에 출정군 총사령부의 참모기구. 군령을 전달하고 군사 행정을 담당하였다.원 간섭기 이전에는 기구 내의 뚜렷한 기능상의 분화가 없었던 듯하나, 이후로는 군사 행정을 전담하는 수령관(首領官) 또는 녹사와 군령 전달을 책임지는 진무소(鎭撫所) 조직으로의 직무 분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된다.
내사문하성(內史門下省) 고려시대의 최고 중앙의정기관(議政機關)으로 내사성(內史省)과 문하성(門下省)을 합한 명칭. 982년(성종 1)에 내의성(內議省)을 고친 이름으로, 종1품 내사령(內史令)이 관장하였다. 내사성은 조칙(詔勅)에 관한 일을, 문하성은 왕명(王命) 하달과 중신(重臣)들의 건의를 담당하였으므로 그 권한이 매우 컸고, 두 성(省)의 관계가 밀접하여 성종 때는 두 성이 하나의 성처럼 되었다. 뒤에 내사성을 중서성(中書省)으로 개칭함에 따라 중서문하성으로 고쳤다.
낭사(郎舍)고려시대 중서문하성에 소속된 정3품 이하의 관원에 대한 총칭. 중서문하성의 명칭 변경에 따라 성종 때에는 내사문하성낭사(內史門下省郎舍), 문종 때에는 중서문하성낭사, 1369년(공민왕 18) 이후에는 문하부낭사(門下府郎舍)로 불렀다.줄여서 ‘낭사’, 혹은 성랑(省郎)·간관(諫官)이라고도 하였으며, 어사대(御史臺) 관원과 합칭해 대간(臺諫)이라고도 불렀다. 이에 반해 중서문하성의 2품 이상 관원은 성재(省宰)·재신(宰臣)·재상(宰相) 등으로 칭하였다.낭사는 내사문하성이 발족된 982년(성종 1)에 처음 설치되어 고려 전시대에 계속 유지되었다. 1401년(태종 1) 문하부가 혁파되고 의정부로 개편되면서 사간원으로 독립하였다.
남한대토벌작전(南韓大討伐作戰)1909년 9월 1일부터 10월 30일까지 2달에 걸쳐 진행된 전라남도와 그 외곽지대의 반일의병전쟁에 대한 일본군의 초토화 작전.1907년 군대해산으로 거세게 타오른 제3단계 의병전쟁이 가장 격렬한 곳은 전라남도였다. 이에 일제는 2,000여 명의 군대를 동원하여 3단계에 걸친 작전으로 이 지역 의병을 진압했다. 제1단계 작전은 남원을 기점으로 고흥·광주·영광으로 이어지는 지대, 제2단계는 고흥·광주·영광 근방을 기점으로 남서해안에 이르는 지대, 제3단계는 도서지방으로 탈출한 의병을 섬멸하기 위해 무인도 지역까지를 대상으로 한 초토화 작전이었다. 양민과 민가까지 살육·방화·약탈함으로써 수많은 양민이 학살당했다. 의병장만도 103명이 희생되었는데, 그중 전해산 등 23명은 체포..
남북협상남북협상은 1948년 2월에 김구와 김규식이 북쪽의 김일성과 김두봉에게 협상을 제의하여 실현되었다. 당시, 유엔 소총회에서 남한만이라도 총선거를 실시하여 정부를 수립할 것을 결의하자, 김구와 김규식은 남한 단독 정부의 수립을 반대하고 북쪽에 남북 협상을 제의하였던 것이다. 이 제의에 대하여 북쪽이 응하게 되자, 남북 협상이 1948년 4월 중순부터 5월 초순까지 진행되었다. 남북 협상은 독립 운동 세력의 통일 전선론과 그 맥을 통하는 것으로서, 주체적 평화 통일론에 입각한 통일 국가 수립을 목적으로 김구와 김규식이 제의하여 이루어졌으나, 남한과 북한이 각각 미국과 소련을 배경으로 단독 정부의 수립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 차원에서 보면 비현실적인 것이어서 아무런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
남북조절위원회(南北調節委員會) 남북 공동성명의 합의사항들을 추진하고 남북관계를 개선, 발전시키며 통일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설립된 남북한 당국간의 정치적 협의기구. 조국의 자주적 통일문제와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간의 교류 및 군사적 문제 등을 합의, 결정하는 기구이다.칠사(7.4) 남북공동성명1972년 7월 4일 남북한 당국이 를 구성,운영할 것을 합의하고 발표한 공동성명=>남북조절위원회.
남북 통일방안 비교남북한 양측이 연합제 안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에 대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한다는 '6.15남북공동선언'이 채택됨에 양측 통일방안에 대해 이목이 쏠리고 있다. 양국 통일방안의 과도기에 해당하는 연합.연방 안의 차이점은 중앙정부의 존재 여부에 있으며 이에 따라 군사권, 외교권, 내정권이 어디에 있는지 논란이 일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4일 오후 회담에서 남북통일을 지향하는 단계로 외교와 군사에 관한 권한을 연방(연합)정부가 아니라 지금처럼 각각 남북의 '지역'정부가 갖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다음은 김일성 주석이 91년 1월 신년사에서 통일 완성형의 연방제를 점진적, 단계적 연방제로 개념을..
남북국 (南北國) 남북국이란 남쪽의 통일 신라와 북쪽의 발해를 합쳐 부르는 용어인데, 이 말 속에는 발해사도 한국사의 일부라는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을 처음 학문적으로 천명한 사람은 조선 후기(18세기)의 실학자 유득공이었다. 그는 그의 저서 "발해고"의 서문에서 발해사를 배제한 고려 시대의 역사가들을 비판하면서, 발해사도 마땅히 우리 민족사의 일부로 받아들여 남쪽의 통일 신라와 함께 남북국으로 불러야 옳다고 주장하였다. 발해사를 우리 민족사의 일부로 보는 근거로는 첫째, 발해의 고구려 계승 의식을 들 수 있다. 발해인들은 항상 고구려의 계승자로 자처했으며, 당시의 이웃 나라들도 이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발해 문왕이 일본왕에게 보낸 국서나 그에 대한 일본왕의 답서에는 발해왕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