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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아
골품제도(骨品制度) 신라 때 혈통의 높고 낮음에 따라 관직 진출, 혼인·의복·가옥 등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규제를 한 신분제도. 세습성이 강하고 신분간의 배타성이 심한 것이 특징이다. 골품 제도는 신라의 정치, 사회 전체의 기반이 되는 엄격한 신분 제도였다. 골품 제도는 골품, 즉 혈통의 존비(尊卑 - 높고 낮음)에 따라 정치적인 출세나 일상 생활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의 특권과 제약이 주어지는 제도였다. 신라 국가 형성기 이래의 정치체제 및 사회발전 과정에서 정비되어, 이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에도 장기간 존속하다가 신라의 멸망과 함께 소멸되었다. 골품에는 성골, 진골과 6두품 ~ 1두품의 여섯 두품이 있었다. 성골은 김(金)씨 왕족 중에서도 왕이 될 자격을 가진 최고의 골품이었으나, 진덕 여왕을 ..
고증학(考證學) 중국 명(明) 말, 청(淸) 초에 대두한 유학의 한 학풍. 송(宋)·명(明)의 유학, 즉 성리학이나 양명학 등의 형이상학적 학풍에 대한 반발로 일어났다. 종래의 유학이 지나치게 사변적(思辨的)이 되어 현실성과 생산성을 상실하고 공리공론의 추상적 논리에 빠지게 되자, 이에 대한 반발로 경사(經史)의 엄밀한 고증에 의해 경학(經學), 역사학, 지리학, 금석학(金石學), 음운학, 문자학, 천문, 역학 등 광범한 분야를 탐구 대상으로 하면서, 이른 바 실사 구시(實事求是)의 자세로 연구에 임하고자 하는 학풍이 대두하였는데 이를 고증학이라고 한다. 실사 구시란 사실에 바탕을 두고 진리를 탐구하고자 하는 것으로, 실사 구시에 입각한 고증학의 싫증주의는 중국 과학 정신의 표현이었다. 고증학의 이 실사..
고종의 강제퇴위
고조선의 세력 범위 비파형 동검과 고인돌(북방식)은 만주와 북한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굴되어 고조선의 세력 범위를 짐작하게 해 준다.
고조선(古朝鮮) 한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국가. 1. 명칭 처음 사서에 등장할 때 '조선'이라 하였다. 고조선이란 명칭은 삼국유사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이 때 고조선(왕검조선)이라 한 것은 기자조선이나 위만조선과 구분하기 위해서였다. 그 뒤 제왕운기에서는 단군조선을 전조선(前朝鮮), 기자조선을 후조선(後朝鮮)이라 하였다. 고조선이란 명칭이 널리 쓰여진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였다. 이씨조선과 구분되는 고대의 조선이란 의미이다. 구체적으로 고조선이 포괄하는 범위에 대해서는, 서기전 2세기 초에 일종의 정변을 통해 등장한 위만조선 이전 시기에 존재한 조선만을 칭하는 경우와, 위만조선까지를 포괄해 고조선이라 하는 경우로 나누어진다. 정치사적인 측면에서는 전자를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위만조선의 사회와..
고인돌(지석묘, dolmen)선사시대의 돌무덤. ‘지석묘(支石墓)’와 같은 뜻이며 거석문화에 속한다. 성격은 무덤으로서의 구실이 크다.우리 나라의 고인돌은 거의 국토 전역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이제까지 보고되지 않은 함경북도지방뿐만 아니라 강화도(하점면 부근리 지석묘, 사적 제137호) 같은 해안 도서나 또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제주도와 흑산도에서도 발견되고 있다.대체적으로 이들은 서해 및 남해의 연해지역과 큰 하천의 유역에 주로 분포되어 있다. 특히, 전라도·황해도에 가장 밀집되어 있다. 그러나 동해지방으로 가면 그 분포가 희박해지며 산악지대에서 가끔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의 위치는 서해로 흘러가는 강줄기 근처로, 결국 고인돌은 서해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우리 나라의 고인돌은 거의 ..
고분벽화(古墳壁畵)고대 무덤의 내부 벽에 그려진 그림.왕과 귀족 등의 지배층 무덤에 그려졌으며, 죽은 사람의 사후세계를 위해 제작되었다. 주벽에는 현실생활과 관련된 내용을, 천장에는 하늘세계와 관련된 내용을 그려넣어 무덤 안을 하나의 축소된 우주로 꾸몄다. 한대(漢代)부터 그려지기 시작하여 4세기부터 7세기 중엽 사이에 고구려에서 가장 성행했으며, 고대회화의 양식과 함께 당시 사람들의 내세관(來世觀)을 비롯한 사상, 종교, 각종 생활풍속 등을 담고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지금까지 발견된 벽화가 그려진 무덤은 모두 93기로 그중 81기는 고구려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