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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아
경제문감(經濟文鑑) 경제육전(經濟六典) 경제문감(經濟文鑑) 조선 전기 1395년(태조 4) 정도전이 지은 조선왕조의 정치조직에 대한 초안. 활자본. 상·하 2권 1책. 권근이 주해를 붙이고 정총이 서문을 썼다. 상권에서는 재상제도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특히 중국 한·당나라 때의 예를 들어 서술하고 재상의 직책 등에 관해 기술하였다. 하권에서는 대간·위병·감사·수령의 직책에 관해 논하였다. 총론적으로 이 책은 조선시대의 정치체제는 감사와 수령의 통할권을 재상이 장악하는 재상 중심의 중앙집권체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제육전(經濟六典) 조선 개국 초에 편찬·반포된 국가의 기본 법전. 후에 제정된 《경국대전》의 전신이다. 이 책은 여러 가지로 유별되는데, 조준육전·하륜육전·이직육전·황희육전 등은 ..
경제개발 5개년계획(經濟開發五個年計劃)우리나라에서 1962년부터 경제발전을 위해 5년 단위로 실시하고 있는 경제개발계획추진과정 :이승만 정부에서 작성(7개년 계획) → 장면 내각 때 수정(5개년 계획) → 5.16 군사 정변 이후 군사 정부에서 실천(1962) 경과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 - 차관도입, 수출주도형 공장 건설 추진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7~1971) -외자도입촉진법→마산수출자유지역 설치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1~1976) -중화학 공업에 중점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7~1981) -공업국으로 탈바꿈결과 : 소득과 수출 증대, 지속적인 경제 성장 달성 문제점 : 정부 주도의 경제 체제라는 점 평가 :각 계획에서 제시했던 수량적 목표와 ..
경재소(京在所) 조선시대 중앙정부가 지방의 유향소를 통제하기 위하여 서울에 설치한 연락기구. 고려시대 사심관과 비슷한 기구이다. 중앙 정부의 고관이 출신 지방의 경재소 임원이 되었다. 선초에는 이를 통해 유향소를 중앙에서 직접 통제할 수 있어, 향촌 자치를 허용하면서도 중앙 집권을 효율적으로 강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조·성종 대에는 중앙의 훈신·척신들이 연고지의 경재소를 관장하면서 지방 관리와 결탁하여 불법을 자행하였고, 유향소까지 장악하자 지방 사림들이 반발함으로써 사화(士禍)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후 수령의 권한 강화로 유향소의 지위가 격하됨에 따라 경재소도 1603년 선조때 폐지되었다.관련항목 : 유향소
감고(監考)조선시대 정부의 재정부서에서 전곡(錢穀) 출납의 실무를 맡거나 지방의 전세·공물징수를 담당하던 하급관리. 중앙에서는 서리, 지방에서는 향리들이 이 일을 맡았으므로 감고서원(監考書員) 혹은 감고색리(監考色吏)·감고색장(監考色掌)이라고도 하였다.재물과 관련하여 감고색리들의 농간이 심하였으므로, 1418년(세종 즉위년)에는 경기도의 전세 수납에서 감고를 배제하고 3인의 수령이 직접 담당하게 하였으나 업무가 지지부진하여, 이듬해부터 다시 감고색리들에게 맡기게 되었다.전세부과를 위한 답험(踏驗 : 농작물의 상황의 조사)의 일로 경차관(京差官)을 파견할 때도 감고서원들을 수행시켰는데 이들의 농간이 많았고, 지방의 수령들이 전세와 공물의 징수를 위하여 동원하는 감고색리들의 작폐도 심하였다.1472년(성종 ..
거간(居間)타인간의 상행위의 중개 및 토지와 가옥의 매매·임대차·전당의 중개를 직업으로 삼는 중간상인. 거간은 객주(客主)와 함께 전래의 대표적인 중간상인으로 생산자와 상인, 상인과 상인, 상인과 소비자, 국내상인과 외국상인 사이에서 거래를 알선하고 구문(口文, 口錢)을 받았다. 거간의 종류는 활동 방법과 취급 상품에 따라 여러 형태가 있었다.거간이 주거하는 장소가 객주집의 내부인가 외부인가에 따라 내거간(內居間)과 외거간(外居間)으로 나누어진다. 내거간은 객주의 사용인으로 일체의 업무를 담당, 처리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었다. 이 내거간은 다시 동사거간(同事居間)과 노력거간(勞力居間)으로 나누어진다.동사거간은 객주의 자금에 자기의 자금을 투자하고, 또 업무를 같이 보는 자를 말하며, 노력거간은 다만 거래..
경원 이씨 (慶源 李氏) 고려 귀족 사회에서는 혼인 관계가 매우 중시되었다. 통혼의 대상이 되는 가문의 정도가 자신과 가문의 출세에 직결되기 때문이었다. 고려에서 최고의 가문은 왕실이었다. 그러므로 모든 귀족 가문은 왕실과의 혼인 관계를 맺으려 하였고, 또한 문벌 간에 상호 중첩되는 혼인 관계를 맺었다. 왕실 외척으로최고의 문벌을 이룬 대표적 가문이 경원 이씨였다. 경원(인주) 이씨 가문을 일으킨 사람은 이자연(李子淵)이었다. 그는 세 딸을 문종의 비로 납비(納妃)하였고, 그의 세 아들의 딸이 각각 선종, 순종의 왕비로 납비되었다. 그의 손자 이자겸(李資謙)은 한 딸은 예종비로, 두 딸은 인종비로 납비하였으며, 당대의 명문 귀족들과도 인척 관계를 맺었다. 그리하여 경원 이씨는 10여 대에 걸쳐 5명의 수..
경영형 부농 경영의 합리화를 통해 부를 축적한 조선 후기의 부농(富農)을 말한다. 농민들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영농 기술을 개발함과 동시에, 경영을 합리화하여 소득을 높이기도 하였다. 농민들이 의도한 방안에는 많은 농지를 적은 노동력으로 일구어 소득을 늘리는 법과 적은 토지에 소득이 높은 작물을 재배하여 수익을 늘리는 법이 있었다. 전자의 방안을 흔히 광작이라 하는데, 한 집에서 넓은 토지를 스스로 경작하는 방식이었다. 이앙법과 견종법으로 노동력이 절감되어 농민 1인당 경작 면적이 넓어지니까 가능하였다. 후자의 방안으로 농민들은 고소득을 보장하는 인삼, 담배, 목화, 채소, 과일, 약재 등의 상품 작물을 재배하였다. 특히 인삼과 담배는 인기있는 상품 작물이었다. 서울 근교에서는 채소 재배가 성하여 농민..
경연(經筵), 서연(書筵) 경연은 국왕이 정치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지식을 얻거나, 자성(自省)의 기회를 가지기 위해 학식이 많은 신하들과 경서나 사서를 읽고 토론하는 자리인데, 세자인 경우에는 서연이라 하였다. 이것은 중국의 송나라에서 시작된 제도이다. 우리 나라에 이 제도가 받아들여진 것은 고려 중기로서, 이 때는 간헐적으로 행해지다가 공민왕 무렵에 다소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신하측으로부터 이 제도를 상설화시키려는 노력이 줄기차게 추구되어, 나중에는 왕의 정사의 태반이 이 자리에서 이루어질 정도로 그 비중이 높아졌다. 예컨대, 세종 때에는 집현전에서 국왕과 세자와 강론하는 경연과 서연에 각각 10 명씩의 학자를 배정하였고, 국왕의 정사가 거의 이 곳에서 논의되었던 것이다. 원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