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역사의 흔적 (56)
히스토리아
선조는 의인왕후 사망 후 3년 뒤인 1602년 이조좌랑 김제남의 딸을 간택하여 계비로 맞아들이게 되는 데 이때 선주의 나이가 51세였고, 인목왕후의 나이는 불과 19살이었다. 사실 선조의 경우 자신이 정실 소생이 아니었던지라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인묵왕후를 통해 꼭 정실 소생의 후손을 낳아 자신의 뒤를 잇게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인목왕후는 1603년에 정명공주를 낳고, 다시 3년 후에는 영창대군을 낳는다. 이미 전란중에 세자로 정해졌던 광해군과 그 무리들은 이를 경계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이때부터 조정은 광해군을 지지하는 대북과 영창대군을 지지하는 소북으로 나뉘어져 싸웠는데 영창대군을 유독 이뻐하던 선조는 소북의 유영경을 영의정으로 올려 세우면서 영창대군은 선조의 뒤를 이을..
시골 양조장 부엌의 부지깽이도 일어선다는 모내기 날 막걸리는 새참거리에 불과하지만 가장 중하게 챙기는 먹거리였다.일손이 좀익자 싶자 막걸리 타령부터 하는 모내기꾼 눈치에 주인네는배달 자전거를 기다리다 못해 20리 떨어진 면 소재지 양조장을 향해 냅다 뛰어가곤 했다. 농경사회의 틀이 유지되던 70년대 말까지 막걸리는 농민들이나 도시 이농민의 삶 자체였다.생계나 자식 걱정 등으로졸아든 새가슴을 열어주는 막역한 벗이었다.또 말 안듣는 손자놈도 할아버지가 부르면 쪼르르 달려갔다.손자 손에 쥐어준 100원이면 동네 앞 구멍가게에서 주전자에 막걸리 한 되를 사고도 50원이 떨어져 온갖 주전부리가 가능했다. 이렇게 막걸리는 농경사회와 동고동락했다.그래서 막걸리를 농주(農酒)라고도 했다.배고프던 60~70년대 막걸리는..
설씨녀(薛氏女)와 가실(嘉實) 신라 진평왕 때 경주에 설씨 성을 가진 한 노인이 딸을 데리고 살고 있었다. 집안 형편은 어려웠지만 얼굴이 단정하고 행동이 반듯해서, 동네 총각들이 그녀를 사모하면서도 감히 말을 건네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큰 걱정이 닥쳤다. 아버지에게 군대 소집에 응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그녀는 늙고 병든 아버지를 차마 멀리 떠나보낼 수 없었고, 여자의 몸으로 함께 모시고 갈 수도 없었기 때문에 근심에 잠겼다. 이때 사량부에 사는 가실이라는 총각이 그녀의 아버지 대신 군대에 가겠다고 자청하며 나섰다. 가실은 일찍부터 그녀를 사모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설씨녀는 거울을 반으로 쪼개어 서로 나누어 가지고 병역기한인 3년을 약속하고 헤어진다. 가실은 설씨녀에게 말 한필을 선..
[김춘추와 문희] 삼국유사의 기록이다. 김유신((신라에 투항한 금관가야 구해왕의 증손)에게 문희, 보희 두 누이가 있었다. 보희가 어느 날 西岳(서악)에 올라가 소변을 보았는데, 서라벌 전역이 소변에 모두 잠겨버렸다는 꿈을 꾸었는데 그 꿈 이야기를 들은 문희는 비단치마를 주고 그 꿈을 샀다. 이로부터 열흘 뒤에 김춘추(진지왕의 손자, 후에 태종무열왕)는 김유신과 함께 김유신의 집 앞에서 축국(蹴鞠=공차기놀이)을 하게 되었다. 거기서 김유신은 김춘추의 옷깃을 일부러 밟아 끊어지게 한 다음 자기 집에서 옷을 수선할 것을 권하면서 집안으로 들이고, 누이등생들을 불러 옷을 꿰매게 했다. 보희는 사소한 일로 귀한 분을 대할 수는 없다며 사양했고, 갑자기 문희가 나서서 자기가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문희가 옷을 꿰..
연주대(戀主臺) 관악산 최고봉인 연주봉(해발 629m)한 켠에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연주대(戀主臺)가 있다. 통일신라 문무왕때인 677년에 승려 의상(義湘)이 관악산에 관악사(현재의 연주암)를 창건하고, 관악산 최고봉인 기암절벽 위에 약간의 석축을 쌓아 터를 다져 지은 암자로 이때는 '의상대'라 이름하였다. 그후 조선 태조 원년인 1392년에 중건하였었고, 현재의 건물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석가모니와 나한들을 모시는 불당인 응진전이 있다. '연주대'라고 불린 것은 조선 초의 일이며,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개국한이후, 남아있던 고려 충신들이 이곳에 모여 개경 쪽을 바라보며 고려왕조를 연모하였다하여 연주대(戀主臺)라 이름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또한 태종이 셋째 왕자인 충녕대군을..
봄은 맞은 관악산에 진달래도 맘껏 뽐내고 있다.관악산에서 본 서울시내 관악산의 바위들 관악산 기상관측소 연주대가 아슬아슬 걸쳐있다. KBS 송신소 관악산의 벚꽃 관악산 호수공원2011. 04. 17일요일 관악산을 같이 가기로 한 일행이 갑자기 못갈 형편이 생겨 혼자서 호젓한 산행을 하다. 11:30 사당역 6번출구 도착 11:45 관음사 입구 11:56 관음사 옆 체육시설[안내판에 연주대까지 2시간이라고 적혀있음] 12:16 국기봉 12:30 헬기장[사당 2.2km, 연주대2.7km(80분) 이정표에 이렇게 써있다.] 12:39 하마바위 12:50 헬기장, 해태상 13:08 헬기장[연주대 1.2km] 여기서 점심 먹고 13:30 헬기장 출발 14:10 벼랑끝 바위타고 연주봉에 올라서다. 14: 20 관악..
마로니에공원 중앙에 서 있는 은행나무(마로니에공원은 이 은행나무가 상징처럼 되었답니다.)아침햇살 받으며 모이를 찾고있는 비둘기들(유난히 비둘기들 많아요.)공원에 널부러져있는 은행나뭇잎(미화원 아저씨가 아직 출근전인가봐요.)공원 내에 있는 서울대학교유적기념비(참고로 이 자리에 1975년까지 서울대학교 본부와 문리대가 있었습니다.)공원 한켠에 서있는 김상옥 열사의 상(1923년 일제치하헤서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쫓기다가 이곳에서 경찰과 3시간여의 총격전 끝에 서거하였습니다.)공원 내에 설치된 상설 야외무대.(모 기업의 후원으로 설치되었나봅니다.)이른 아침의 대학로 거리(마로니에 공원의 바로 맞은편에 혜화역 3번출구가 보이네요. 2번출구 앞에서 컷)■지난 주말 아침 8시 경에 찍은 풍경입니다. 우리집..
도봉산역 방면에서 자운봉(도봉산 주봉) 올라가는 등산로 변에 위치한 인절미 바위 ■위 그림의왼쪽 상단 안내판에 씌여있는글은 아래와 같습니다.탐방객들에게 ‘인절미 바위’라 불리는 이 바위는 화강암의 일종으로 박리작용에 의해 풍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박리작용은 암석의 표면이 양파껍질처럼 떨어져 나오는 현상으로 그 원인은 가열과 냉각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암석은 한낮의 햇볕에 의해 가열되고, 밤에는 냉각되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지만, 열전도율이 낮기 때문에 가열의 효과는 암석의 표면에 집중됩니다. 가열로 인해 팽창하는 표면층은 일정 한계를 넘으면 압력에 의해 표면이 벗겨지는데 이것이 박리현상입니다.인절미 바위가 자연적인 현상에 의해 서서히 박리작용이 일어나도록 불편하시더라도 탐방로를 따라 우회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