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역사의 흔적 (56)
히스토리아
민속으로 보는 성(性)성(性)은 가장 고귀한 것이면서도 오랜 기간 유교 전통에 갇혀 그에 대해 관심을 드러내면 천박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민간에 전해 내려온 설화들과 전국 각지에 널려 있는 남근석, 여근석 등 각종 성 관련 민속자료들은 조상들의 성에 대한 관심을 공개적으로 표현한 상징물들이다. 전통 생활과 민속에 뿌리내린 성에 대한 올바른 접근 없이는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의 깊이도 얕을 수밖에 없다. 한국문화 유산 가운데 아직 온전하게 설명되거나,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많다. 그것들이 사라지기 전에 제대로 알리는 작업은 매우 긴요하다. 쉬운 예로 전통적인 성과 관련한 풍속과 이야기가 그러하다. 최근에 와서 이들과 관련한 보고서나 논문, 그리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하지..
아주 옛날옛적 '거울'이라는 개념조차도 잘 알려지지않았던 때의 일이다.산골에 사는 한 여자가 서울에는 둥글기가 보름달 같은 청동거울(그 개념조차 없었던 시절)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 거울을 한번 보기를 원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남편이 서울에 가게 되었는데 마침 보름 때였으므로 저 달처럼 생긴 물건을 사 오라고 하였다.그런데 남편이 일주일여 동안에 걸쳐 서울에 도착하여 달을 보니 반달이 되었으므로 아내가 원한 것이 빗인 줄 알고 빗을 사 왔다.돌아온 남편에게 아내가 요구한 것이 그것(빗)이 아니라고 하자, 그는 서울의 달과 시골의 달의 다름이 괴이하다고 생각하였다. 그 후 남편이 다시 서울에 가서 거울을 사 왔다. 부인이 거울을 보자 거울 속에 여자가 있으므로 평소 자기 얼굴을 본..
예성강곡(禮成江曲) 옛날에중국 당나라상인인하두강(賀頭綱)이라는사람이바둑을잘두었다.그가한번은예성강에갔다가아름다운여인을보고는탐나는마음이생겼다.그는그녀의남편과바둑을두어거짓으로지고는많은물건을건네주었다.그리고이번에는아내를걸고바둑을두자고하였다.남편은이로운일이라고생각을하고그렇게하기로하였다. 하두강은실력을다하여단번에이기고는그의아내를빼앗았다.그리고는그의아내를배에싣고떠나가버렸다.이에남편은후회와한(恨)에차서 노래를 불렀는데, 이 노래가 곧 예성강곡이다. 그런데 그부인이떠나갈때에몸을매우죄어매서하두강이그녀를건드리지못했다고한다.배가바다가운데에이르자뱅뱅돌고가지않으므로점을쳤더니지조가굳은여인에게감동이되었으니그여인을돌려보내지않으면배가파선되리라하였다.그래서뱃사공들이두려워하며하두강에게이일을알리자 하두강은그녀를돌려보내주었다고한다. 이에 그녀..
금 줄요즘 남편들은 만삭 아내의 출산일이 다가와도 준비할 게 거의 없다. 하지만 지난 70년대 이전 아버지들만해도 마음과 몸이 함께 바빴다. 산모에게 먹일 미역, 탯줄을 자르고 묶을 가위, 실, 대야를 챙기고 볏짚을 모아 새끼도 꼬아야 했다. 또 이 새끼에 매달 숯, 청솔가지와 붉은 고추도 미리 준비해야 했다. 새끼줄과 그 장식품들은 “아기를 낳은 곳이니 출입을 삼가달라.”는 뜻으로 대문 밖에 내걸 ‘금줄’을 만드는데쓰였다.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하던 시절, 금줄에 걸린 붉은 고추는행인들의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할 만큼 스스로 당당함을뽐냈다. 빈부격차나 신분의 고하, 지역을 가릴 것없이 새끼줄에 빨간 고추와 숯, 솔가지가 매달렸으면 아들이고 솔가지와 숯만 걸리면 딸이었다. ‘인줄’ 또는 ‘검줄’이라고도 불렸..
의적(義賊) 3인방 탐관오리나 나쁜짓을 일삼는 양반들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도적을 의적(義賊)이라 한다. 조선시대 민심이 흉흉하던 때에 나타난 의적(義賊) 3인이 있었으니, 연산군 때의 홍길동, 명종 때의 임꺽정, 숙종 때의 장길산이 그들이다. 광해군때 허균이 쓴 '홍길동전'의 주인공인 홍길동은 연산군때까지 활약한 실존인물이다. 이 홍길동은 충청도를 중심으로 경기도, 한양 등지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나쁜 관리나 양반들의 재물을 빼앗아 어려운 백성들을 도와주곤 했다. 그러다가 연산군 6년(1500)에 붙잡혀 귀양을 갔으며, 그 이후 홍길동에 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 후 약 60년 후인 명종때 임꺽정이 나타난다. 이때는 시기적으로 정치의 혼란과 관리들의 부정부..
바보온달과평강공주 고구려평강왕(平岡王,平原王)때에이름을온달이라고하는마음이착한사람이있었다.그는용모는괴상했나속마음은밝아홀어머니를걸식으로봉양하며살고있었다. 그때평강왕의딸로서평강공주가있었는데어려서몹시울어,부왕이자꾸울면온달에게시집보내겠다는농담을하곤하였다.시집갈나이28세가되어부왕이귀족인상부고씨집에시집보내려하자공주는부왕의평소말대로온달에게가겠노라고우겼다.부왕은노하여공주를궁궐에서내쫓자공주는그길로온달을찾아가결혼을했다. 공주는자기가궁궐에서나올때가지고온패물로의식을해결하고,왕실의병약한말을사오게하여잘먹이고온달에게무예와학문을닦게하였다. 고구려는매년봄3월3일에낙랑의언덕에서수렵대회를열었는데,여기서온달이실력을발휘하여이소식이왕에게까지알려지게되었다.그후중국후주의무제가쳐들어오자온달이선봉이되어무찌르니,사위로인정받아그에게대형(大兄)의벼슬이내려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