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역사의 흔적 (56)
히스토리아
호동왕자(好童王子) 호동(好童)은유리왕의셋째아들인대무신왕의차비(次妃)에게서난소생이다. 왕은그를심히사랑하여호동(好童)이라이름하였다.대무신왕15년4월에왕자호동이옥저(沃沮)를유람하였는데,낙랑의왕최리(崔理)가여기나왔다가호동을보고"그대의얼굴을보니보통사람이아니로다. 그대야말로북국(北國)신왕(神王)의아들이아니겠는가?"하며호동을데리고돌아가사위를삼았다. 그뒤,호동이고구려에돌아와낙랑(樂浪)에있는아내최씨녀(崔氏女)에게사람을보내어전하기를"그대의나라무구(武庫)에들어가고각(鼓角-북과나팔)을몰래찢어버린다면내가그대를아내로서맞아들이려니와그렇지못하면우리는부부가될수없으리라."하였다. 그이유는낙랑에는옛날부터신기한고각이있어적이침입하면스스로울리는지라,그로써침략할수가없기때문에그랬던것이다. 과연최리의딸(낙랑공주)은몰래무고에들어가예리한칼로그고각을찢..
설씨녀와 가실설씨녀(薛氏女)는신라율리민가의여자다.비록외롭고한미한집안에서태어났으나,안색이단정하고지행이순결하여본사람치고부러워하지않는자가없었으나감히범하지못하였다. 진평왕때그아버지가늙은나이로서군에편입되어정곡이란곳에수자리살러가게되자,그녀는늙고병든그아버지를차마멀리이별할수도없고,또여자의신분이라모시고따라갈수도없어그저답답히여기기만하였다. 사량부(沙梁部)에사는소년가실(嘉實)은비록가난한집안이지만,교양이있는바곧은사나이다. 일찍이설씨를좋아하고있으나감히말은못하더니설씨가자기어른이종군하는것을근심한다는말을듣고드디어찾아가설씨에게청하기를"내가비록용렬하지만항상의기있는사람이라자처해왔다. 못난이몸으로귀댁아버님의출역을대신하고싶다."라고하므로설씨는대단히기뻐하며들어가아버지께아뢰었다.아버지는들어오라고하여보고말하기를"듣건대그대가노인의역사를대행한다하니기..
1. 아리따운 여인원효가 소요산 암자에서 혼자 수도할 때의 일이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어느 날 밤. 낯선 젊은 여자가 찾아와 하룻밤을 묵고 갈 것을 청했다. 원효는 비내리는 밤이므로 그 여인을 되돌려보낼 수가 없어 하룻밤 묵어 가도록 허락했다. 침침한 등불에 비친 그 여인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수도승인 원효는 괜히 여자를 맞아들였다고 뉘우쳤지만 이미 허락한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 눈을 감아도 이 여인의 모습이 떠올라 원효는 정진(精進)을 할 수 없었다. 원효는 "모든 것은 마음에 따라 일어나는 법이다. 내가 色心이 없다면 이 여인은 목석이나 다름없다. 나의 오랜 수도(修道)를 이 여인으로 인하여 하룻밤 사이에 무너뜨릴 수 없다." 고 되뇌면서 비에 젖은 여인을 따뜻한 곳으로 눕히고 손으로 차가운..
쉽고 흔하게 쓰면서도 확실하게 알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역사상 낙랑공주는여러 명이 있었을 것입니다.그러나 여기서는 우리가 공부하면서 흔히 들었던 낙랑공주 두 명을 알아보기로 하지요. [1] 하나의 낙랑공주 (樂浪公主) 하나는 낙랑국의 왕인 최리의 딸로 이는 호동왕자와의 비련으로 잘 알려져 있는 낙랑공주이다. 널리 쉽게 알려져 있는 이야기지만 여기서 다시금 정리해 보기로 한다. 호동(好童)은 고구려 유리왕의 셋째 아들인 대무신왕의 차비(次妃)에게서 태어난 소생이다. 호동왕자는 서기 32년 4월 옥저로 놀이를 나갔다가 낙랑국의 왕 최리(崔理)를 만난다. 낙랑국의 왕 최리는 호동의 기개와 용모에 반하여 호동을 데리고 낙랑국으로 간다. 최리왕은 호동에게 낙랑공주를 보여주었다. 호동도 낙랑공주..
아사달과 아사녀백제의 유명한 석공인 아사달에게는 아리땁고 어여쁜 아사달이라는 아내가 있었다. 신라에서 불국사 내에 석가탑을 짓고 있을 때 아사달은 김대성의 초청을 받아 신라로 갔다. 아사달이 탑을 세우는 일에 온 정성을 기울이는 동안 한 해 두 해가 흘렀다. 한편 남편과 만날 날만을 고대하며 그리움을 달래던 아사녀는 기다리다 못해 천리길을 마다않고 신라 불국사를 찾아왔다. 하지만 탑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여자를 들여보낼 수 없다는 금기 때문에 남편을 만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사녀는 그리움에 사무친 나머지 날마다 불국사 문앞을 서성거리며 먼발치에서나마 남편을 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이를 보다 못한 주지스님이 아사녀에게 말했다.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그마한 못이 있소. 지성으로 빈다면 탑..
연오랑과 세오녀옛날 신라땅 동해 바닷가 조그마한 어촌에 연오랑과 세오녀라는 부부가 살고 있었다. 남편 연오랑은 가난하지만 부지런한 어부였고, 아내 세오녀는 밭을 매거나 베를 짜는 일을 했다. 이렇게 연오랑과 세오녀는 오손도손 정답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연오랑은 해변을 거닐며 낚시하기에 알맞은 곳을 찾다가 거북처럼 엎드려 있는 바위 하나를 발견하여 신을 벗어 놓고 그리로 올라가 낚시대를 드리웠다. 이날 따라 한 참을 있어도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해가 중천에 올 무렵 갑자기 몸이 갸우뚱하여 놀란 나머지 주위를 살펴보니 바위가 바다로 두둥실 떠가고 있었다. 연오랑을 태운 바위는 동쪽으로 계속 떠내려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황금빛으로 빛나는 태양이 연오랑의 머리 위에 바짝 붙어 따라 오고 있는 것이었다. ..
서동과 선화공주백제 제30대 무왕 그의 이름은 장이다. 무왕의 어머니는 과부였다. 그녀는 서울 남지가에 집을 짓고 홀로 살던 중 그 못의 용과 교통하여 무왕 장을 낳았다. 무왕의 아명은 맛둥이고, 그의 재능이 좋으며도량은 넓고 깊은 사람이었다. 항상 마를 캐어 팔아 생활해 나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서동이라고 부른 것이다. 서동은 신라 진평왕의 세째 공주 선화가 세상에 둘도 없는 아름다움을 지녔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는 머리를 깎고 신라의 서울로 왔다. 서울의 마을 아이들에게 그는 마를 나누어 주었다. 아이들은 호감을 가지고 그를 따랐다. 서동은 마침내 한 편의 동요를 지었다. 그리고는 마을의 그 아이들을 꾀어, 자기가 지은 동요를 무르고 다니게 했다. "선화 공주님은 남 몰래 밀어 두고(밀통하고),..
연권녀(효녀지은) 효녀지은(知恩)은신라한기부백성연권(連權)의딸인데천성이효도에지극하였다.어려서아버지를여의고홀로그어머니를봉양하여나이32세가되었으되시집을가지않고혼정신성하여좌우를떠나지아니하며봉양할것이없으면품팔이라도하고혹나가서밥을빌어다먹이기도하였다. 그러기를오래하자피곤함을견디지못하여부자집을찾아가종으로팔리기를자원하여쌀10여석을얻어두고종일토록그집에서일하다가저녁이면밥을지어가지고와서봉양하여삼사일은지났다. 그어머니가딸더러이르기를"지난날에는밥을먹어도달았는데요즘은밥은좋으나맛이전만못하고마치칼로심장을에는것같으니이것이무슨심사냐"하니딸이실정을말하였다. 그어머니는"나때문에네가종이되었으니내가빨리죽는것만못하다."하고소리를놓아크게우니딸도따라울어슬픔이길가는나그네를감동케하였다. 그때효종랑(孝宗朗)이구경나왔다가보고돌아가부모님께청하여조백석과의복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