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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아
대한자강회(大韓自彊會) 한말의 민중계몽단체. 즉 국권 회복을 위해 교육과 산업면에서 실력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정치단체우리나라 온 국민이 분려자강(奮勵自强)하여 국력을 배양하고 독립을 쟁취하자는 취지로 1906년 3월 윤효정(尹孝定)· 장지연(張志淵)· 나수연(羅壽淵) 등이 이준(李儁)의 헌정연구회를 확장하여 발족시켰다. 1907년 대한자강회 청년 회원들이 고종 황제의 폐위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여 이완용 내각에 의해 강제해산되었으나 다시 대한협회로 변신하였다.
대한의원(大韓醫院)한말 대한제국시대의 국립병원. 서울대학병원의 전신이다. 1899년 4월 최초로 국립병원으로서 내부병원(內部病院)이 설치되고, 1900년 6월 광제원(廣濟院)으로 바뀌었으며, 1907년 3월 대한의원으로 개칭되었다. 서양 의학에 의한 의료·의학교육제도를 확충할 목적으로 치료부·위생부·교육부의 3부를 두었다. 원장은 내부대신이 겸하였고, 의관·약제사·교관·사무원·기사·통역관 등을 두었으나 그 해 12월 거의 일본인으로 바뀌고 지석영(池錫永)·이규준(李圭濬) 등 몇 명만 참여하였다. 1910년 총독부의원으로 개칭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大韓民國 臨時政府)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인 4월 13일에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조직·선포된 우리나라의 역사상 최초의 공화제 임시정부.3·1운동 직후 일본 통치에 조직적으로 항거할 기관의 필요성을 통감한 애국지사들이 상하이에 집결하여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을 구성하고, 임시정부를 조직하여 관제를 선포(의장 李東寧, 국무총리 李承晩)하였다. 임시정부의 초기 활동은 크게 나누어 연통제 실시와 외교 활동이라고 할수 있다또 임시헌법을 제정·공포하였으며, 임시대통령에 이승만을 선출하고 내각을 개편하였다. 1926년 9월 국무령제를 채택하고 김구(金九) 등이 국무령이 되어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1932년 항저우(杭州)로 옮겼다가 중국 정부와 함께 충칭〔重慶〕으로 갔다. 1940년 광복..
대한민국건국강령(大韓民國建國綱領)1941년 11월 28일에 제정·공포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기본이념.임시정부는 이미 만주사변 직전에 조소앙(趙素昻)의 제창으로 삼균제도(三均制度)의 건국원칙을 천명했다. 삼균제도란 정치·경제·교육에 있어서의 균권(均權)·균부(均富)·균학(均學) 및 인균(人均)·족균(族均)·국균(國均)을 지향한 것으로 그것의 구체화된 형태가 바로 대한민국건국강령이다. 건국강령은 1944년 제5차 개정헌법에서 법제화되었고, 해방 후 1948년의 제헌헌법의 기초가 되었다. 내용은 총강(總綱)·복국(復國)·건국(建國)의 3장 22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강에서는 건국정신을 삼균제도에서 찾았고, 토지의 국유화, 순국선열의 유지, 3·1운동과 임정수립과의 불가분의 관계를 포괄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임시정..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新報)애국 계몽 운동의 선두에 선 항일 언론지로 대한제국 말기 한글과 영어로 발행한 일간신문. 1904년 7월 8일 영국인 배델(Ernest T. Bethell 한국 이름은 裵說)이 양기탁(梁起鐸) 등 민족진영 인사들의 도움을 받아 창간하였다. 창간 때는 한글 2면, 영문 4면이었으나, 1905년 한문판과 영문판으로 나누었는데, 독립된 영문판은 〈The Korea Daily News〉라는 제호로 펴냈다. 발행인이 영국인이었기 때문에 일본의 검열을 받지 않고 일제의 침략정책을 비판하면서 항일사상을 고취시켰다. 대한매일신보는 사실상 신민회의 기관지로, 특히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한일합병과 함께 1910년 8월 28일을 끝으로 폐간되었다.
□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1919년 홍범도 지휘하의 옛 의병들이 주축이 되어 러시아 영토와 만주 지방에서 창설한 독립군 부대. (중국 동부지역 간도국민회(間島國民會)에 소속된 항일무장투쟁단체) 왕칭현〔汪淸縣〕 펑우퉁〔鳳梧洞〕에서, 의병대장 출신의 홍범도(洪範圖)를 총사령관으로 400여 명이 결집하여, 1919년 갑산·혜산진의 일본군영을 습격해 승리를 거두웠다. 1920년의 봉오동전투에서 대승한 뒤 대한독립군단에 편입되었다. 1921년 소련국 한족여단에 편입되면서 해체되었다. □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 1920년 만주에서 조직된 독립군 연합부대. 일제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중국측의 요구에 로 남·북만주 각지, 특히 북간도에 있던 독립군 부대들은 새로운 항일전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중소국경 부근인 밀산(..
↑ 신바람난 산(山)사람들..'바람난 여자'보다는 '바람기 있는 여자'가 훨씬 매력적이라합니다..여기의 기(氣)는 생동감, 멋, 흥 등의 의미를 포함하는데, 이는한자어지요.이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 우리 고유어에 '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신'이란 어떤 일에 혼을 쏟아부어 흥이 저절로 돋아나서 일어나는 희망차고 즐거운 기분을 말할 겁니다.따라서 '바람'이 우리 고유어인 '신'과 어우러질 때는신바람기만 가져서는 안되고, 그 기를 발산하여 '신바람난 사람'이 훨씬 매력적이 됩니다.한국인은 신이 나면 용이 되고, 그 신명을 잃으면 지렁이가 된다했습니다.용이 되느냐 지렁이가 되느냐 하는 선택은 오로지 내면에 감추어진 그 '신'을 끌어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있다하겠습니다.아마 지금의 사회상황이 이 신바람을 ..
때때옷을 입은 아이들(조선시대 말기)안동이 시댁인 딸 둘만 둔 처제가 이번 설에 내려갔다가 시어른으로부터 아들 하나 낳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꾸중(?)을 들었답니다. 그것 때문에처제네 부부는 올라오면서 티격태격하다가 처가에 새배 와서까지도 앙금이 남은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신령님께 비는내용 중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달라는 것보다는 자식을 그것도 꼭 아들을 점지해달라는 것이 더 많았습니다. 그리고 여자들은 아들을 못 낳으면 큰 죄를 지은 것 마냥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답니다. 또 아들이 없다는 것은 남자들이 첩을 얻는 구실이 되기도 했답니다. ‘은자동아 금자동아, 은을 주면 너를 사랴, 금을 주면 너를 사랴’라는 자장가도 아들에 대한 우리 조상들의 염원을 숨김없이 담고 있는 것을 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