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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아
개신교(改新敎)16세기 초 북유럽에서 중세 로마 카톨릭 교의(敎義)와 제의(祭儀)에 대한 반동으로 태동한 교파. 로마가 카톨릭교, 동방정교회와 더불어 그리스도교 3대 교파의 하나가 되었다. 유럽에서 일어난 일련의 죵교 전쟁을 거친 이후, 특히 19세기에 이르러 전 세계에 다양한 형태로 급속하게 펴져 나갔다.
개시(開市)조선후기 중국·일본 등을 상대로 정부 발행 서계(書契)를 가진 자가 물품을 교역하던 공식 대외 교역시장.경원개시(慶源開市) : 1646년(인조 24) 공인된 청(淸)나라와의 공인 국제 무역 시장. 1646-1882 북관개시(北關開市) : 조선 인조(仁祖)이후 함경북도 회령(會寧)과 경원(慶源)에서 청(淸)나라와 행하던 무역 시장. 1637-1882 왜관개시(倭館開市) : 임진왜란 후 일본과 교역을 재개한 것. 1603-1872 중강개시(中江開市) : 조선시대 의주(義州)의 중강(中江)에서 열리던 조선과 청(淸)나라와의 무역. 1593-1700 책문개시(柵門開市) : 조선후기에 민간상인 정부 허가에 의해 청나라책문에서 무역을 행한 것을 말함. 1659-1887 회령개시(會寧開市) : 조선 인조 ..
개벽(開闢)천도교에서 펴낸 월간 잡지. 1920년 6월25일 창간되어 1926년 8월1일 통권72호를 끝으로 강제 폐간되었다.'개벽'이란 명칭은 천도교의 '후천개벽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판 160쪽 안팎의 국한문 혼용체로 씌여 졌으며 집필자로는 주로 당시 계급주의 경향문학을 내세운 신경향파 작가들이 참여했다. 정신의 개벽과 사회의 개조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다가 창간호가 압수 당한 것을 시작으로 1926년 일제에 의해 폐간될 때까지 발매금지 34회, 정간 1회, 벌금 1회의 탄압을 받았다. 그 뒤 차상찬, 김기전 등이 13호를 더 속간하여 모두 85권의 개벽이 발행되었다.
개국연호(開國年號)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해(서기로 1392년)를 개국 원년으로 하는 새로운 연호를 말한다. 이에 따르면 이 연호를 채택한 해(갑오개혁을 단행한 서기 1894년)는 개국 503년이 된다. 이로써 당시 사용하던 청나라 덕종의 연호인 광서(光緖)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이와 같이 중국 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개국 연호와 같은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중국과의 전통적인 사대 관계를 청산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이것은 또한 당시의 상황으로서는, 상대적으로 일본의 한반도 내에서의 우위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충북 괴산군 연풍면에는 은티마을이 있다.은티 마을 입구 커다란 화강암 판석에 마을의 유래가 적혀있다. 사실 은티 마을은 여느 산골 마을처럼 계곡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그래서 그 형세가 마치 여성의 성기와 같은 여근곡(女根谷)이다. 이를 여궁혈(女宮穴)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근곡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에도 나타난다. 신라 선덕여왕은 세 가지의 일을 미리 알아냈는데, 그 중 하나가 여근곡에 숨어 있던 백제 병사를 찾아낸 일이다. 즉 겨울인데도 영묘사 옥문지(玉門池)에서 개구리가 울었다고 한다. 이것을 들은 여왕이 군사를 여근곡에 보냈다. 그곳에는 경주를 습격하기 위해 백제 병사들이 숨어 있다가 전멸됐다. 게다가 이들의 후미에 있던 병사까지 몰살됐다고 한다. 개구리가 우는 것은 남자가 성냄을 뜻하는 것이..
☞개국공신(開國功臣)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새로운 왕조 성립에 공을 세운 신하들에게 준 공신 칭호.고려시대 :고려의 개국에는 태봉왕(泰封王) 궁예를 물리치고 왕건을 고려 태조로 추대한 사람들을 개국공신이라 하고 3등급으로 나누어 포상하였다. 1등공신에는 홍유(洪儒)·배현경(裴玄慶)·신숭겸(申崇謙)·복지겸(卜智謙) 등이 책록되었고, 2등공신에는 견권(堅權)·권능식(權能寔)·권신(權愼)·염상(廉湘)·김락(金樂)·연주(漣珠)·마난(麻煖)·최응(崔凝)·유금필(庾黔弼)·이총언(李忿彦) 등 100여 명이 책록되어 금은그릇·비단 ·능라(綾羅)·포백(布帛)이 사급되었으며, 3등공신에는 2,000여 명이나 책록되었다.조선시대 :조선은 1392년 8월 개국의 논공행상을 위한 공신도감을 설치하고, 1개월의 심의 끝에 공신 ..
제천은 물론 의림지로도 유명하지만, 송학면 무도리의 공알바위는 그에 못지않게 유명하다.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알바위’로 약 150×100㎝의 크기의 알과 같은 바위가 안에 들어 있다. 그러나 이 바위 앞에는 도로가 오래 전부터 나 있었고 철도가 바로 옆에 위치하여 시끄러움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바위의 안쪽을 유심히 쳐다보니 자갈들이 쌓여 있었다. 이것은 아들을 낳고 싶은 부녀자들이 넣어 놓은 흔적이다. 즉 개울 건너편에서 자갈 3개를 던져 한 개라도 이 바위 안쪽에 들어가면 아들을 낳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리가 족히 20m나 떨어져 있어 바위 안쪽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고도의 수련이 요구될 만하다. 바위 안쪽으로 들어갈 만한 크기도 20㎝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넓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