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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아
대한국민의회(大韓國民議會)1919년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건립한 임시정부.한국과 러시아가 두만강 하류에서 접경하게 된 것은 1860년 9월 북경조약(北京條約)으로 러시아가 우수리강 동안(東岸)을 영유하게 된 데서 비롯되었다. 이 때를 전후하여 한국의 유리민이 만주의 간도와 연해주(沿海州)로 들어갔고, 이 지역 한인의 수는 1898년 2만 3000명, 1921년 말 9만 4554명이 되었다.이와 같이 형성되어간 한인사회에 1905년 한족회(韓族會)가 구성되었다. 그 해 러시아가 러일전쟁에서 패하자 동부 시베리아에 출정하였던 러시아 군대가 반란을 일으켰다. 이후 시베리아가 일대 혼란에 빠짐에 따라 한인사회가 자위책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 이 단체를 조직하였던 것이다.대한국민의회는 한말 이후 러시아령 지역에..
대한국 국제(大韓國 國制) 1899년 대한제국이 반포한 한국 최초의 근대적 헌법.(대한제국의 헌법)윤용선(尹容善) 등이 기초하였다. 헌법’이 아닌 ‘국제’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국회에서 제정된 것이 아니라 황제명으로 제정, 반포되었기 때문이다.근대 제국의 절대왕정체제를 도입하여 왕권의 전제화를 꾀하는 내용이었다. 국왕(황제)은 무한 불가침의 군권(君權)을 향유하며, 입법·사법·행정·선전(宣戰)·강화(講和)·계엄·해엄에 관한 권한을 가지는 존재로 규정되어 있다.전문 9조로 되어 있다. 제1조 대한국은 세계만국의 공인되온바 자주독립하온 제국(帝國)이니라.제2조 대한제국의 정치는 이전으로 보면 500년 전래하시고 이후로 보면 만세에 걸쳐 불변하오실 전제정치이니라.제3조 대한국 대황제께옵서는 무한하온 군권(君..
.태평시대에 가난한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난국에는 부자의 편이 수치라고 공자는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렵고 힘들 때 그 사람들의 희생을 짓밟고 번영을 누리는 소수 부유특권층의 행태를 나무라는 말일 것입니다.요즘 경제위기에 직면하여 가진자의 그룹들이 한 번 새겨들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 마 름마름이란 지주의 위임을 받아 소작지를 관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대개 지주가 서울이나 다른 도회지에 살고 있을 때 자기의 농지를 현지어ㅔ서 관리하는 사람을 두게 되는 데, 이 관리인을 마름이라 한다. 즉 부재지주의 소작권을 관리하는 고용인인 셈이다.그런데 이 마름들은 소작권에 대한 일체의 권한을 갖고 있어 소작인을 바꾼다든가, 소작료를 올린다거나 하는 등 절대권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소작인에 대한 이들의 행악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들은 소작인에게 술과 음식을 강요할뿐 아니라 심지어는 소작인의 처나 딸에게 수청들기를 요구하는 짓까지 행했다. 또한 소작인에 대해 상전 노릇을 하면서 종처럼 마음대로 부려먹고, 지주와 소작인 사이에서 착취, 횡령을 일삼는 등 농촌의 기생충적인 존재로서 ..
시간여행 - 시간속으로 사랑은 분석을 요하지 않는다.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매우 논리적이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매사에 신속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칸트는 한 여인과 사귀고 있었는데 도무지 구혼을 하지 않았다. 여인은 견디다 못해 칸트에게 청혼을 했다. '저와 결혼해 주세요' 칸트의 대답은 간단했다.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칸트는 그때부터 결혼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도서관에 가서 결혼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다. 결혼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글을 읽으며 연구에 몰입했다. 그리고 그 여인과 결혼하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칸트는 여인의 집에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그때 여인의 아버지가 나와 말했다. '너무 늦었오, 내 딸은 이미 세 아이의 어머니가 됐다오.' ..
이미지출처 : 에듀넷■ 소쩍새와 철쭉꽃전설 옛날, 아주 옛날에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살고있었답니다. 그런데 이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엄청나게 미워하였다네요.. 그 미워하는 정도가 심해서 밥먹는 것에서부터 잠자는 것에 이르기까지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미워했답니다.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밥을 먹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아주 작은 솥만을 사용하여 거기에 밥을 하게 만들었답니다. 밥이 적어항상 시어머니만 밥을 먹고 며느리는 밥을 먹지 못하게 되었지요.. 몇 날 며칠이 아니라 몇 달씩을 굶주림에 허덕이던 며느리는 결국 야위어 피를 토하며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피를 토한 자리에는 꽃 한 송이가 피어났고, 죽은 며느리는 한 마리 새가 되어 날았답니다. 후애 그 꽃을철쭉꽃이라 했고(그래서 철쭉의 붉은 색을 며느리..
이미지출처 : 국립중앙과학관(http://www.science.go.kr) ■ 접동새 전설 옛날 그 옛날에 평안북도 박천의 진두강가에누나 하나와남동생 아홉으로 구성된10남매가 홀아비와 같이 살고 있었다네요. 어느 날 아버지가 계모를 들였는데, 이계모는 포악하여 전실 자식들을 많이 학대하였답니다.그러다 누나가 나이가 들어 박천땅의 어느 도령과 혼약을 맺었답니다.부자인 약혼자 집에서 누나에게 많은 예물을 보내 왔는데 이를 시기한 계모가 누나를 농속에 가두고 불을 질렀답니다. 동생들이 슬퍼하며 타고 남은 재를 헤치자 재 속에서 한 마리 새가 날아 올랐갔는데, 이 새를 훗사람들이 접동새라 불렀답니다. 접동새가 된 누이는 계모가 무서워 남들이 다 자는 야삼경에만 아홉 동생이 자는 창가에 와서 슬피 울어댔답니다.한..
내사산(內四山)과 외사산(外四山)태조 3년(1394) 10월 25일 지금의 수도로 정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 600여 년간에, 서울은 그 영역에 있어서나 면모에 있어서, 그리고 기능에 있어서 많은 변천이 있었다.이러한 변천을 평면적으로 보면 현재의 광화문 비각을 기점으로 하는 북위 37도 34분, 동경 126도 59분의 위치를 중심으로 전시대를 통하여 반경적(半徑的) 방사선상으로 확대 ·발전하여 왔다. 그러므로 한마디로 서울시라고 하지만 시대에 따라, 그 영역 범위가 대단히 다르다. 여기서는 14세기의 '천도 당시의 서울'과 '오늘의 서울'로 크게 구별하고 양자를 다같이 말할 때에는 그냥 '서울'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천도 당시의 서울은 대체로 도성내를 말한다. 이를 지형적으로 보면 북쪽의 백악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