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전체 글 (428)
히스토리아
남북 통일방안 비교남북한 양측이 연합제 안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에 대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한다는 '6.15남북공동선언'이 채택됨에 양측 통일방안에 대해 이목이 쏠리고 있다. 양국 통일방안의 과도기에 해당하는 연합.연방 안의 차이점은 중앙정부의 존재 여부에 있으며 이에 따라 군사권, 외교권, 내정권이 어디에 있는지 논란이 일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4일 오후 회담에서 남북통일을 지향하는 단계로 외교와 군사에 관한 권한을 연방(연합)정부가 아니라 지금처럼 각각 남북의 '지역'정부가 갖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다음은 김일성 주석이 91년 1월 신년사에서 통일 완성형의 연방제를 점진적, 단계적 연방제로 개념을..
남북국 (南北國) 남북국이란 남쪽의 통일 신라와 북쪽의 발해를 합쳐 부르는 용어인데, 이 말 속에는 발해사도 한국사의 일부라는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을 처음 학문적으로 천명한 사람은 조선 후기(18세기)의 실학자 유득공이었다. 그는 그의 저서 "발해고"의 서문에서 발해사를 배제한 고려 시대의 역사가들을 비판하면서, 발해사도 마땅히 우리 민족사의 일부로 받아들여 남쪽의 통일 신라와 함께 남북국으로 불러야 옳다고 주장하였다. 발해사를 우리 민족사의 일부로 보는 근거로는 첫째, 발해의 고구려 계승 의식을 들 수 있다. 발해인들은 항상 고구려의 계승자로 자처했으며, 당시의 이웃 나라들도 이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발해 문왕이 일본왕에게 보낸 국서나 그에 대한 일본왕의 답서에는 발해왕을 "..
남부여(南夫餘)538년(성왕 16) 백제가 서울을 웅진(熊津)에서 사비(지금의 부여)로 옮기면서 한때 사용했던 국호.남부여라는 국호는 백제가 성왕 때 중흥을 꾀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하여 멸망할 때까지 별칭으로 썼다. 이는 백제왕실이 당시까지도 스스로 부여족의 한 갈래임을 자처하고 있었던 증거의 하나이다.
남면북양 정책(南綿北羊政策) 1930년대 일제의 공업 원료 증산 정책의 하나이다. 일제는 1930년 산미증식계획이 자국민의 반대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자, 한국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한반도를 원료 공급지로 이용하려는 공업 원료 증산 정책을 폈다. 이 계획의 일환으로써 남쪽에서는 목화를 재배하고, 북쪽에서는 양을 사육할 것을 우리 농촌에 강요하였던 것이며, 이를 남면북양정책이라 한다.
난전(亂廛)조선시대 전안(廛案)에 등록되지 않은 신흥 상공업자의 상행위 또는 그러한 가게. 판매를 허가 받지 않고 물건을 판매하는 행위나 시설을 말한다.봉건적 어용상단(御用商團)으로서의 특권을 가지지 않은 자가 상행위를 함으로써 봉건적 상업 구조를 문란하게 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조선은 초기부터 육의전(六矣廛)을 중심으로 서울의 국지적 시장권을 장악하는 많은 시전(市廛)이 있었다. 그러나 국가는 국역(國役)을 부담하는 육의전에 그 보상으로 상품을 독점 판매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였다. 이 제한을 넘어서서 임의로 상행위를 하면 난전으로 규정하고 금단하였다.※전안(廛案) : 시전에서 취급하는 상품의 종류와 상인의 주소·성명을 등록한 공적인 문서. 1706(숙종32)년에 실시.관련항목 : 금난전권, 시전
낙랑군(樂浪郡)1. 평안북도 영변군에 있던 옛 고을인 위천현(渭川縣)의 옛 이름.2. 고조선 멸망 후 한(漢)나라가 고조선의 옛 땅에 설치한 4군의 하나.한사군의 위치를 중국의 요동지역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으나 한반도 중 북부 및 남만주 일부에 걸쳐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낙랑군의 관할지역은 오늘날의 평안남도 일대와 황해도 북부였다는 것이 통설이다. 낙랑군은 BC 108년 한 무제(武帝)에 의해 옛 고조선의 중심부에 설치되어 이후 약 400여 년간 동방에 대한 중국의 정치·경제·문화적 침투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조선현(朝鮮縣)을 수현(首縣)으로 하고 11개의 속현을 거느리며 출발한 낙랑군은 한사군의 중심지였다. BC 82년에는 옛 진번군(眞番郡)의 7현에 남부도위가, 옛 임둔군(臨屯郡)..
나성(羅城)안팎의 이중으로 된 성곽의 바깥 성벽 . 자성 또는 내성. 황성. 재성의 바깥에 있는 넓은 주거지까지 에워싼 이중의 성벽을 일컫으며, 나곽이라고도 한다. 특히 도성의 구조에서 왕궁과 관청을 두른 왕성이나, 재성의 둘레에 있는 일반 주거지를 포용하여크게 쌓은 성을 나타내는 용어로 흔히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