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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아
나제동맹(羅濟同盟) 삼국시대에 신라와 백제가 고구려의 남하정책에 대항하기 위해 맺은 동맹.5세기 433년에 장수왕의 남하 정책에 위협을 느낀 백제(비유왕), 신라(눌지왕) 두 나라가 맺은 공수(攻守 - 공격과 방어를 같이 함) 동맹이 그 시초이다. 그 뒤 혼인 동맹(백제 동성왕과 신라 소지왕)으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6세기에는 백제 성왕이 신라 진흥왕과 함께 고구려를 공격, 실지(失地 - 잃었던 땅)를 회복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백제가 회복한 한강 하류 지역을 신라가 다시 빼앗자(진흥왕의 배반),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 났고, 성왕은 전사하였다. 이로써 120여 년 간 지속되었던 나제 동맹은 결렬되고 말았다.
나당전쟁(羅唐戰爭)신라는 진덕 여왕 2년(648), 당시 나당 연합군이 승리하면 평양 이남의 전 지역을 신라가 소유한다는 약정을 맺은 바 있었다. 그러나 백제의 멸망 후(660), 당은 백제 지역에 5 도독부를 두는 한편, 이이제이(以夷制夷 - 이웃 나라끼리, 또는 이웃 나라의 내부 세력끼리 서로 대립시키는 정책)의 외교 정책으로 신라의 내부 분열을 획책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나당의 대립은 차츰 심각해져 갔다. 신라는 고구려가 망하고(668), 당의 주력군이 철수하자 고구려 유민과 합세하여 당군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로써 나당 간의 대립은 전면전으로 확대되었다.
김홍집내각1894년 7월부터 1896년 2월까지 근대적 제도 개혁을 추진한 개화파 내각.제1차 김홍집내각(1894.7 ~ 1894.12): 군국기무처를 설치하여 개혁 (친일내각)제2차 김홍집내각(1894.12 ~ 1895.7) : 홍범14조 발표 (친일내각)제3차 김홍집내각(1895.7 ~ 1895.10) : 3국간섭기 (친러내각)제4차 김홍집내각(1895.10 ~ 1896.2) : 을미개혁 (친일내각)
김헌창의 난(金憲昌의 亂)통일신라시대인 822년(헌덕왕 14) 웅천주도독(熊川州都督) 김헌창이 일으킨 반란.김헌창의 아버지 김주원은 선덕왕이 죽은 뒤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위치였으나 여러 가지 정치 알력으로 즉위하지 못했다. 김헌창은 지방의 외직(外職) 및 중앙의 시중(侍中) 등을 역임하다가 821년 웅천주도독이 되고, 이듬해 부친이 왕이 되지 못한 것을 구실로 반란을 일으켰다. 나라 이름을 장안(長安), 연호를 경운(慶雲)이라 하고, 무진(武珍)·완산(完山)·청(菁)·사벌(沙伐) 4주(州)의 도독과 국원(國原)·서원(西原)·금관(金官) 3소경의 사신(仕臣)을 비롯하여 여러 군현의 수령을 위협하여 한때 충청도·전라도·경상도 일대의 넓은 지역을 제압하기도 했다. 반란 소식이 중앙정부에 알려지자 헌덕왕은 8..
김사미와 효심의 난(金沙彌 孝心 亂)1193년(명종 23) 경상도 청도에서 김사미가 일으킨 반란. 12세기에 접어들면서 고려의 귀족지배체제는 점차 동요하기 시작해, 1170년(의종 24) 무신정권이 수립되자 문신을 중심으로 하는 귀족정치는 일단 종식되었다.무신정권은 약 1백년간(1170∼1270) 존속하지만 무신 집권 초기의 정국은 매우 혼란하고 불안정해, 과중한 수탈과 고된 생활에 지친 농민과 천민들은 이 틈을 타서 전국적으로 큰 민란을 일으켰다.민란은 무신정권의 전기간에 걸쳐 간헐적으로 발생했으나, 그 규모나 양상이 가장 크고 격렬한 것은 무신정권 초기의 약 30여 년간에 걸쳐 일어난 삼남(三南) 각지의 민란이었다.1170년(의종 24) 무인의 난 이후 농민과 천민의 항쟁이 전국 각지에서 치열하게 전..
김보당의 난(金甫當―亂)고려 명종 때 동북면병마사로 있던 김보당이 일으킨 반란. 계사년(1173)에 일어났으므로 계사난이라고도 한다.김보당은 전통 있는 문신 귀족가문 출신이었지만, 의종의 정치에 비판적이어서 처음에는 무인정권에 참여했다. 그러나 무인정권이 수립된 뒤 정치질서가 더욱 문란해지자 집권무인에 대한 반대입장으로 돌아섰고, 그로 인해 중앙의 정치무대에서 축출되어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로 나가게 되었다. 김보당은 동북면의 병권을 맡게 된 것을 기화로 병마녹사(兵馬錄事) 장순석(張純錫)·이경직(李敬直)과 모의하여 1173년(명종 3) 8월에 정중부(鄭仲夫)·이의방(李義方) 토벌과 의종(毅宗)의 복위를 외치며 군사를 일으켰다. 장순석과 유인준(柳寅俊)은 수백 명의 군사를 이끌고 거제(巨濟)로 가서 ..
기호홍학회1908년 1월 민족 자강을 위한 교육 계몽운동을 목적으로 기호지방에 설립한 애국계몽단체.교육 진흥과 산업 발달 중심.
기호학파(畿湖學派)조선조 유학자 이이를 조종으로 하는 성리학자들에 대한 총칭. 이황의 학설을 따르는 영남지방의 성리학자들을 지칭하는 영남학파와 구별하여 일컫는 말이다. 기호지방은 경기도를 중심으로 황해도와 충청도 일원으로서 동쪽은 관동지방, 남쪽은 호남지방, 북쪽은 관서지방과 정경을 이룬다. 이 곳에서 이이의 성리설을 추종하는 유학자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후기에 이르러 그 학통을 전수하여 학파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고려말에 정주학이 전래되고 조선조 건국과 더불어 유교적 학풍이 적극 장려되면서 유교의 학술 문파가 발달하였다. 유학자들은 기묘사화를 전후하여 정치 참여와 더불어 산림에 은거하며 후학을 지도하는 일에 큰 가치를 두게 되었다.